책을 읽은 다음에 할 일은
책을 읽는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얻고 이전에 잘못 알고 있던 것도 바로잡을 수 있으므로 더 똑똑해진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지 않은 지금 시대에서 책을 즐겨 읽는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은 특별함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확실히 사고력이 길러지고 내면의 성장을 이루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독서의 완성은 책을 덮을 때가 아니라 깨우친대로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실천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 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독서의 최종 목적이 변화에 있다고 한다면, 책을 읽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 [은유가 된 독자]에서는 독자를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로 표현한다. 특히 독자를 상아탑 속의 은둔자로 표현할 때는 두 인물을 대조해서 표현하였는데,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햄릿이다. 상아탑은 곧 서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원래는 긍정적인 의미로 불리기 시작했으나 점차 세상을 바꿀 능력도 없는 지식인들의 도피처를 의미하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서재에 오래 머무는 목적이 세상을 보다 더 바르게 이해하기 위함이었으나 햄릿의 경우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로 삼았었다. 이 두 인물의 모습에서 책을 읽는 사람의 두가지 전형을 볼 수가 있다. 그 차이는 삶의 변화에 있다. 삶의 변화는 또한 세상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상아탑 속에 갇힌 은둔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읽은 내용은 많아서 변하지 않는 삶임에도 지식만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자기 삶을 향해 겨눠야 할 화살을 세상을 향해 돌리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의 지식인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가장 경계해야 할 미래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책만 읽고 변화를 위한 실천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상아탑 속에서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독설만 해대는 지식인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독자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미래상은 상아탑 속의 은둔자가 아니라 탑 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파수꾼은 아주 이른 새벽에 동이 트는 성벽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아침이 오는 것을 세상 누구보다 먼저 보는 위치에 있다. 지식인은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대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이 감지되면 피할 수 있도록 경보를 울리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모두가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역할도 해내야 한다. 지금 시대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으려면 어느 사회나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지식인들이 있어야 하고 좋은 책을 읽고 실천하는 사람이 파수꾼으로서의 지식인이 될 수 있다.
참고.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 행성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