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규원 Sep 10. 2019

천식과 아이스크림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은 모르게 먹었던 아이스크림

  내가 자라면서 우리 부모님을 포함하여 주변 어른들께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내가 생후 19개월쯤인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잘 걷질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가까운 소아과를 갔다가 좀 더 큰 병원으로, 마지막엔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나에게 자세한 병명을 알려주지 않으셨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병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 함께 제일 심각한 부위는 폐였다고 한다. 심하게 아팠던 경험 때문에 나는 건강을 되찾고 난 이후에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를 받았는데, 내가 중학생이 될때까지 결코 먹을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이었다. 폐질환을 겪고 나서 소아과 의사는 내가 천식이 있으니 차가운 음식을 먹어서는 안되고 특히 아이스크림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나는 감기를 거의 항상 달고 살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소아과를 정말정말 많이 다녔는데, 부모님은 늘 바쁘셨기 때문에 9살부터 나는 혼자서 병원을 갔다. 의료보험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병원에 가면 하얀 갱지 노트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는다. 그리고 기다렸다가 진찰을 받고, 주사를 맞고 약을 받아서 집으로 왔다. 병원은 집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고, 지금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에 있었다. 병원에 나처럼 혼자서 오는 아이는 보질 못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형누나들도 혼자는 아니었다. 



  내 기억에 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을 때, 동네에 사시는 어느 할머니께서 내게 쭈쭈바 하나를 주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먹고 싶어서 덥석 받아들고 먹으려는 순간, 엄마가 나오셔서 그 쭈쭈바를 낚아채셨다. 나는 그게 너무 억울했지만 엄마는 협상이 통하지 않는 강한 분이셨다. 우리집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작은 슈퍼마켓을 했는데 처음에 3년 정도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거의 10년동안 이어졌다. 나는 가게에 있는 물건들의 가격을 잘 외워서 틈틈이 가게일을 도와드렸다. 종종 엄마가 식사 준비를 하신다든가 잠깐 외출이 필요하실 때, 나는 짧으면 30분, 길면 반나절 정도를 가게를 보고 있었다. 내 기억에 혼자서 가게를 본 것은 9살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군대에서 포병으로 근무하다가 제대 전 1년은 PX에서 근무하셨다고 했는데, 또 슈퍼마켓을 한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나는 먹을 수 없는) 하드를 내 앞에서 자주 드셨던 것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하드 껍질을 나무 손잡이에 칭칭 감은채로 드시곤 했다. 아이스크림 먹는 것은 진작에 포기해서 당시에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안 그랬던 것 같다. 내가 혼자 가게를 볼 때는 꼭 아이스크림을 몰래 먹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것을 아셨던 것 같다. 한번은 엄마가 화장실 때문에 잠깐 내게 가게를 맡기셨는데, 나는 그 사이에 돼지바 하나를 꺼내서 빛의 속도로 먹어치웠다. 내가 돼지바를 다 먹고 나머지 쓰레기는 그대로 바로 앞에 있는 텅 비어 있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쓰레기통은 뚜껑도 없는 것이었는데, 엄마는 쓰레기통을 보시고도 별 말씀을 안하셨다. 나는 아마도 내 흔들리는 동공을 잘 숨겼다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번은 동네에 한 살 많은 형이 편도선 수술을 했다며 의사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했다고 말해줬다. 편도선 수술이 뭔지도 몰랐는데, 그걸 받으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 형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슈퍼마켓에서 팔던 추억의 아이스크림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편의점에서 팔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내가 몰래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돼지바, 아맛나, 수박바, 비비빅, 빵빠레, 메가톤바 등등인데, 우리집 앞 편의점에 가면 아직도 냉장고 안에 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근데도 편의점에 가서 제일 많이 사는 것은 아이스크림이다. 편의점은 늘 제품별로 묶어서 팔기 때문에 하나씩은 안 사고 여러 개를 사게 되는데, 과거에 100원도 안 하던 하드(쭈쭈바는 20원이었던 것이 생각난다)가 이제는 기본 천원 정도 하는 것 같다. 여전히 나는 호흡기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어서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지는 않지만 다른 군것질 거리 중에서는 가장 즐겨 찾고 있다.


#하드 #아이스크림 #편의점 #슈퍼마켓



photo by KiVEN Zha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애착이 가는 물건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