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함께 일하고 동료 중에 타투를 즐기는 남자선생님이 있다. 여름이면 반팔 셔츠사이로 살짝 보이는 커다란 체게바라 타투가 보인다.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작은 타투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용한 혁명가처럼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하는
체게바라의 명언을 일상에서 은밀히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짧은 반팔을 입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살짝 노출을 시킨다. 타투를 감추려 하는 의도와 보여주려는 심리가 섞여 있는 것처럼, 내 눈에 비치는 걸 보면 온전히 자기 자신만 보려고 하는 타투는 아닌 듯싶다.
겉으로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은 곱고 하얀 얼굴이,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아이돌처럼 보이고, 남자지만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유순한 인상을 중화하기 위해서 자기 몸 곳곳에 반항의 증거를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이란 보기보다 꽤 타이트하다. 일 년간 계획을 짜고 그것을 어긋나지 않게 실천해야 한다.
책임감으로 이끌어야 하고 반듯이 성과를 이루어내야 하는 책임감이 막중하다.
그런 데서 주어지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없이 크다
학생 뒤에는 매처럼 지켜보시는 엄마들이 계신다. 수시로 자기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하시고 궁금해하신다.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할 수 없는 학생의 상태를 두고 우린 외줄 타기를 한다 아슬아슬하게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도록 설명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있다.
아마도 타투하는 선생님의 이유도 타투를 몸에 새기면서, 잠시 쉼을 얻고 그 기운을 얻는 정도일 테고,
고도로 긴장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를 하고 싶은 강한 욕구가 아닐까 싶어서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타투를 하는 것은 아마도 멋내기용이자 기분 전환을 위한 수단일 것이다. 내면에서 꿈틀대는 감정을 타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영화를 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내 귀에 달린 다섯 개의 링은 당신의 말이 틀렸다고 쨍그랑 울어대고 있는 거라고...'
귀걸이를 예쁘게 하고는 기발하게 해석하는 아가씨의 말에서 자기표현이 또 다른 곳곳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노출이 심한 여름이면 가녀린 여자의 어깨에 살짝 보이는 꽃과 나뭇잎 타투를 종종 보게 된다. 보호받고 관심받고 싶은 심리와, 자기를 지키려는 암시와 다양한 해석이 들어 있을 것이다.
흔히 과감하게 프린트된 옷을 보게 된다.
혀를 낼름 내민 커다란 스누피가 그려진 티셔츠를
골라서 입는 일, 폭탄 파마를 하거나 머리를 싹 밀어버리는 일...
타투를 하는 것보다는 약하지만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멋을 내고 싶은 심리와 강하게 나를 다잡고 싶고,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들어있을 것이다
모두가 불 가능한 꿈을 안고 살아가기에 내 몸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더 강하고 다양하게 연출이 된다 소심하게 쏟아내고 싶은 욕구와, 보호받고 싶은 심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작게 때로는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자기 체면이 아닐까 싶다.
보통의 우리네 삶은 오십 보 백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구조에 끼워 맞춰지고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그리 여유 없이 반복을 하며 살아내는 삶이다. 진하게 다가오는 삶의 현장이라면,
어떤 날 오후 서너 시쯤 배가 고파 팬을 쥔 손이 후들거렸을 것이다. 누구는 비바람 맞으며 추운 곳에서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재빨리 점심을 먹고 일하는 사무실로 돌아가면, 오후 근무가 시작할 시간까지 30분 정도 여유가 생긴다.
누구는 졸음을 쏟아내어 엎드려 자고, 또 누구는 인터넷 쇼핑을 하고, 누구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계처럼 빠듯하게 돌아가는 삶에 나의 시간은 없다.
오후 업무시간이 다가오면 허겁지겁 남은 커피를 들이마시다 보면 옷에 찔끔 엎지른다.
커피 얼룩을 몸에 지닌 채
매번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이다. 내가 변화시킬 수도 없는 꽉 조여진 삶에서 어쩌면
타투 한 조각 내 몸에 새기는 것은, 나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