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안 맞으면 흔히
성격차이라고 말을 한다.
성격차이라는 말속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된 것.
어쩌면 성격은 생존 본능과
연결된 것이 아닐까.
성격이라는 게 대부분
생존에 유리하도록 형성된 것.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성격을 바꾸라고 하는 건
죽을 만큼 어려운 거다.
흔히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
"사랑한다면 열정적으로 표현해 보라"는
요구는 있을 수 없는 일.
유전자를 바꾸라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어쩌면 성격은 다른 이에게
사랑스럽게 표현되도록 형성된 것이 아닌,
인간의 생존에 맞춰서 만들어졌을 뿐.
어떤 부부가 늘 토닥거린다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 있을까.
애교 많은 부인은 성격이 급하고,
남편은 묵묵부답 시간을 두고
문제 해결을 원하는 부부.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은
생존 본능과 연결되어 쌓아 둔
일종의 서늘한 결론인 셈.
누군가와 소통이 되지 않고 답답할 땐
세상이 까맣게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감정 최대치를 모두 소진을 하면
상대가 조금 보인다.
그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된 성격을
단순한 논리로
벼랑 끝 낭떠러지로 내몰게 되는 셈.
그 사람에게 변화를 요구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
있는 그대로 봐줘야 할 뿐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모양이 조금 다른 뿐이고
그 성격이, 그것이 개성인 것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아지는 것임을.
형성된 그대로 아름답게 보아야 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