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함께 활동하는 작가님 남편의 부고소식
요즘 부쩍 부고 소식이 많다.
글을 써서 매년 동인지를 만드는 크루가 있다.
그곳에서 함께 활동하는 작가 남편의 부고 소식이다. 작가님 남편은 50대 중반이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사람에게 닥친 비보다.
교통사고로 뇌사상태가 되고 한 달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신 가슴 아픈 소식이다.
얼마 전 단톡방에 "기도해 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전달이 됐고, 다급했던 상황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대로 간절히 기도로 마음을 보탰었다. 그래도 가벼운 타박상 정도려니 하고 일반 병실로 올라가게 되면 간호하시는 작가님을 뵈러 몇몇 사람과 시간을 맞춰서 병원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쉬운 소식이 들려왔다.
여릿하고 소녀감성인 작가님이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을 어찌 견뎌낼까 걱정이 되었다.
평소에 고인을 많이 의지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전국 아마추어 풀코스 마라톤을 즐겨하시던 분이라서 건강에는 자신하셨던 분이라서 안쓰러움이
크다.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 장례식장에 갔다.
마라톤을 하시며 달리는 모습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에 있을 마라톤 대회를 또 참가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막 대학생인 두 아들과 작가님의 소리 없이 흐느끼는 소리에 왈칵 눈물 쏟아진다.
두 아들의 맑은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슬픔이 그대로 전해진다.
장례식장 한쪽에 작가님과 우리는 마주 앉았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과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우린 서로 눈으로 가득 슬픔을 머금고 인사를 나누었다.
슬픔 중에서도 가장 슬픈 이름, 이른 부부의 이별이다.
너무 깊은 슬픔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까?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슬픔이다.
아픔이 너무 커서 우린 서로가 우두커니 정적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작가님의 그 예쁜 얼굴에 슬픔이 가득 묻어있고
초연하게 쓸쓸함이 가득하다.
슬픔을 우리는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까.
사람들은 흔히 말을 한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지고 덜어질 거라고.
그런데 너무 깊은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슬픔을 몸에 지닌 채 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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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작가님에게 다행인 것은
"슬픔을 견딜 수 있는 글쓰기"가
곁에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며 슬픔을 애도하기도 하고, 슬기롭게 극복해 내어, 아픔이 비교적 유연하게 풀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앞으로 어둡고 캄캄한 터널을 홀로 걷는 듯한 날들이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슬픔이 너무 커서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을 만큼 힘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의연하게 글쓰기와 함께 이겨낼 것이다.
너무 깊은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이름을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살아내면 또 살아지는 것이다.
슬픔은 긍정적으로 또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연결 도구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