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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편을 얼마나 수용하는가

음식점에서

by 현월안



점심으로 뼈해장국을 먹으려고 여럿이 갔다.

창가 쪽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맛으로 알려진 가게인데도 그날은 그리 북적이지 않았다. 한쪽 테이블에는 젊은이 몇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고, 그 옆 테이블엔 한 노인이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기침을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노인의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컹컹컹"

속이 다 딸려 나올 것 같은

짙은 감기 기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그리로 향했다. 다들 눈빛엔 당혹과 불쾌, 그리고 애써 외면하려는 무관심이 섞여 있다. 또 누군가는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소리를 높였다.

"거참~"

"밖에 나가서 기침하세요!"

젊은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있다. 단순한 불쾌함의 표현, 그 이상이다.

노인은 별 반응을 하지 않고 기침을 하면서 드시던 국물을 마저 떠먹고는, 급히 계산을 하고 나가셨다.



음식점은 단지 음식을 먹는 것만이 아니다. 타인과의 공간을 공유하는 장소이고, 서로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 조용히 식사를 하고, 소리 안 나게 입을 다물고 씹고, 다른 이에게 불쾌함을 주지 않고... 예절을 지키는 이유는 다른 이의 배려를 위해서다.

기침은 생리 현상이다. 사람은 호흡하고,

또 몸이 반응한다. 기침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급작스럽게 반응하는 신체의 표현이다.

아마도 노인의 기침은 병의 증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감염에 대한 불안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에 기침은, 단순한 생리 반응을 너머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감기로 인한 기침이라면 노인은 스스로 거리 두기를 했어야 한다. 기침이 나오면 밖으로 나가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생리적 한계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음식점이라는 열려있는 곳에서 누군가의 기침은 대부분, 불쾌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노인이 당장 자리를 떠나야 할 이유도 없다.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강요될 수는 없다.

음식점은 타인과 서로 공간이 겹치는 장소다. 타인의 거슬리는 불편함과 마주하게 되면, 그 불편함을 감수하며 식사를 하게 된다.

음식점의 테이블은 때로는 음식을 중심으로 놓인 대화를 하는 곳이고, 무언의 윤리적인 규칙이 있는 곳이다.



음식은 몸을 위한 것이지만, 식사는 마음을 위한 일이다. 그릇을 사이에 두고 앉는다는 건, 누군가와 세상을 나누는 일이다.
음식점 식탁 위엔 음식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하루, 지난 계절, 그리고 오래된 외로움까지 함께 놓인다.



그 젊은 남자는 왜 그리도 감정을 실어서 소리쳤을까? 아마도 그는 자신의 건강을 위협받았다고 느꼈을까? 마음속 작은 울분이 반사적으로 나온 걸까? 반대로, 노인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둘 다 진실을 말한 셈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언젠가 기침을 참지 못하는 노인이 될 수 있다.
나이가 좀 더 들면,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주기를, 내가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날이 올 것이다.


,,,,,,..,.,.,,,,,.,,...,..,,,


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 뒷모습이 혹시 나중에 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옆 테이블의 누군가에게 마음으로 너그럽게 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기침 소리 너머로 들리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느긋하게 들어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타인의 불편함을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내게 묻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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