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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는 조용히 사람을 바꾼다

엄마는 쌀 한 톨에도 정성을 다 하셨다

by 현월안




쌀벌레가 생겨서
주저 없이 쌀을 모두 버렸다


그 속에 담겨 있을 수많은 시간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봉투에 쏟아부었다


언제부턴가 배고픔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텅 빈 냉장고를 보는 일이 아니라

텅 빈 마음을 느끼는 법을

잊어버렸다


엄마는.

쌀 한 톨에도 정성을 다 하셨다
쌀벌레가 나오면
햇볕에 내다 말렸다


배고픔을 모르는 풍요는

조용히 낭비를 허용하고 있다

풍족은 사람을 많이 바꾼다

넘치게, 깨끗하고 정돈된 것은

선택의 자유를 준 듯,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든다


여유는

더 많이 버릴 수 있는 권리를

습관처럼 손에 쥐고 있다


뭐든 아깝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시간과 돈, 편리함이
모든 판단의 잣대가 되어버린
문명의 이기 속에서,


음식은 포장되어 오고,

또 남겨진 채 버려지고

브랜드와 비싼 맛에

더 큰 의미를 가지는 시대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다

그런데 속은 점점 외롭고 허하다

그것은,

무엇이 소중한지

고민하지 않기 때문일까?

무엇을

버리는지 되묻지 않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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