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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숨통이 트인다

by 현월안



살인적인 불볕더위가

몇 날 며칠 도시 위를 덮었다


모처럼,

오늘 비가 내린다

하늘이 스스로를 열었다
굵은 물방울이

고요를 찢어내듯 쏟아지고
지붕 위로, 나뭇잎 사이로,

사람들의 어깨 위로
비가 내린다


기온이 조금 주춤한다

그 조금 앞에 겸손해진다
숨통이 트인다는 말이
이렇게 귀하게 쓰일 줄이야,
폐 안쪽까지 스며드는 선선함이
삶을 다시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하늘이 한 번

눈을 감고 뜨는 일조차
읽어낼 수 없다
자연은 늘 한 걸음 느긋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움직인다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늘이 내리는 비의 침묵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식으로

모든 확신을 적신다

자연은 그렇게

인간의 중심을 흔든다


비는,

과감하고 명쾌하게 찢어버린다
열기 속에 만들어진 확신들,
건조한 이성의 껍질,
가식으로 만든 울타리들,

그리고 남긴다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지금,

비가 내리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저,

모든 것 위에 공평하게 떨어지기에,


비가 오는 순간만큼은

시간도, 마음도 잠시 머문다

삶이 언제나 거창한 이유가

아니란 걸,

빗소리로 틈을 내어 말해준다


세상은 또다시 균형을 잡는다
모처럼 시원하다는 말에

삶이 다 유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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