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함 속에 감춰진 강인함
하얀 벽 위에
흐르는 것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 획 한 획이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낸 나무의 숨결 같았다
박대성 화백의 전시
이건희가 아낀 사람
작가 연세가 팔순,
그런데 그의 작품은 늙지 않았다
위로를 하는 듯한 편안한 작품들,
능수버들의 가지가 흘러내리듯
그림 속 고운 선은
땅에 닿을 듯, 하늘로 뻗을 듯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았다
유연함 속에 깃든 단단함,
온유함 속에 감춰진 강인함이
조용히 나에게 이르렀다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는
먹빛으로만 그려졌는데도 귀에 들려왔다
하얀 물줄기 사이로 적힌 글씨는
칼끝처럼 예리하고 맑은 바람 같았다
'삶은 마음을 닦는 일'
글귀가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다
중용에 나오는 말 '신독(愼獨)'
'홀로 있을 때조차 삼가고 바르게 서는 마음'
그 마음이
붓끝을 살아있게 한 것처럼
세상은 변해도
그림은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노 화백의
예술은 젊다
그 젊음은 나를 오래 바라보게 했다
전시장 한가운데 서서
한 그루 능수버들이 된 듯,
폭포수에 씻긴 듯이
잠시 세상의 무게에서 벗어나 있었다
순간,
예술이라는 묘한 기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흘러가는 것임을,
나를 향해가는 길이,
조금은 더 유연해지고 있었다
전시장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다
너의 마음도 흐를 수 있다
꺾이지 말고, 고집하지 말라
유연하게,
흔들림 없는 뿌리로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