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우연과 필연의 틈
말라버린 샘 앞에 서 있던 날들,
단단히 닫힌 철문처럼
언어가 움직이지 않고,
하얀 종이 위에서 펜 끝은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갈대 같았다
한때는,
종이 위에 흘리던 물길이 다 닳아
'더 이상은 글은 쓰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꾸준히 책을 읽고 사유하고
다시 땅을 파 내려갔다
깊이 더 깊이
그곳에서 다시 솟아오른 맑은 물,
내 안에서 잠든 생각들이
눈을 뜨고 흘러내렸다
긴 시간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 길은
다시 뭔가 잡힐듯한 허공의 몸짓들,
고민했던 날들,
그 긴 침묵은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든 힘이다
이제 어떤 시간이 나를 잡아
흔든다고 해도
이젠 웃으며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저 너머에
따뜻하게 펼쳐낼 것 같은
어렴풋이 잡히는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
흩어지는 순간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늘 그렇게
우연과 필연의 틈에서 흔들린다
그 모순의 진실을
묵묵하게 또,
한 줄의 글쓰기로 건져 올린다
젊은 날엔 불타는 갈망이
언제나 나를 끌고 갔으나
이제는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
부드럽게 움켜쥔다
그 어떤 것이 힘들게 요동치더라도
이제는 여유가 있다
글을 쓰는 일이 나를 떠나지 않았듯,
나 또한 글 쓰는 일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확신,
글쓰기는
일상을 나누는 것이니,
오늘도 나는 주어진 시간에
내 생각을 담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