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결혼식

세상에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걱정이 있다

by 현월안




세상에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듯한 걱정이 있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고, 삼촌이나 고모, 이모의 마음도 그렇다. 피를 나눈 친족이라면, 그들의 삶이 때론 나의 몫이 되기도 한다.



우리 시아버님께도 그런 삶의 몫이 있었다. 시아버님은 형님이 한분 계셨다. 그 형님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아이는 너무도 어린 생명이었고 어린 생명의 두고 아이의 엄마는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는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고, 학업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시아버님의 뒷바라지 덕분이었다.

시아버님의 형님의 아들이니까 어린 장조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깊은 뿌리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아버님은 조카의 학업을 챙겼고, 결혼을 지원했으며, 살 집까지 마련해 주었다. 시아버님이 장조카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뜻하지 않게 장조카마저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두 아이와 엄마는 흔적을 감추고 떠나버렸다.



시아버님의 걱정은 깊어졌다. 손자뻘 되는 그 장조카의 자식들 6살 4살 아들 둘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조차 없었으니, 마음은 늘 무겁고 아렸다.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제대로 자라고 있을까" 노년에 이르기까지도 시아버님은 그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사셨다.



그런데 세월은 두려워했던 것과는 다른 길을 내어주었다. 그 두려움과 걱정이 쌓여만 가던 사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수십 년 만에 시아버님의 장조카의 큰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아버님과 어머님은 연로하셔서, 맏이인 우리 부부가 결혼식에 참석했다. 동대구역 근처 예식장,

결혼식에 가기 전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 없는 결혼식이 얼마나 쓸쓸할까, 신랑의 마음은 얼마나 허전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결혼식은 달랐다. 신랑 곁에는 새아버지가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신랑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배다른 동생들이 둘이나 더 있었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따뜻하게 자라온 듯 보였다. 예식장은 활기와 축복으로 가득했고, 신랑 신부는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삶은 염려하는 방향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돌보지 못한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고, 끝내 붙잡아야 한다고 여겼던 인연도 때로는 스스로 길을 낸다는 것을.

시아버님의 오랜 걱정은 기우였다. 오히려 걱정 속에서 멀리 있던 그 아이들은 자기 힘으로, 또 다른 인연의 도움으로 삶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삶은 그렇게 스스로 회복하고, 다시 피어나고, 예상치 못한 꽃을 피워내는 힘이 있다.



결혼식은 대단한 축복이다. 삶이 가진 놀라운 기쁨이다. 우리 아버님이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전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시아버님의 오랜 세월의 무거움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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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그 걱정보다 훨씬 크고, 더 단단하다. 걱정 속에 사는 동안에도 삶은 묵묵히 길을 내고 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부부가 목격한 가장 따뜻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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