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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다

비가 그치면 세상은 더 맑아질 것이다

by 현월안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여름의 뜨거운 숨결을 다 씻어내듯
유난히 무겁고 깊게 내린다
지친 세상을 닦아내듯
그 속에서 오래된 마음의 먼지를 본다


올해의 여름은 혹독했다
숨을 틀어막듯 내리쬐던 태양,
차마 바깥을 걷지 못할 만큼 그 뜨거움,
아마도 그 뜨거움은
경고가 아닐까,


비가 내린다
대지위에 고요하게 흐른다
세상의 때를 벗기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투명한 길,
문득,
자연은 기다릴 줄 아는데
모두가 늘 서두른다는 사실을,


더위를 탓하다가도

서늘한 바람이 불면 안도하고,

비가 내리면

세상이 맑아졌다고,

다시 자연의 품을 좋아한다


세상은 그저 제 자리에 있고,
순환하며 돌아올 뿐인데
늘 다급히 무언가를 붙잡으려 한다
사라짐이야말로 새로움의 시작임을
깊이 알지 못한다


빗소리를 듣는다
주룩주룩 떨어지는 소리가
어느새 다가와 철학이 된다

비는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도
다시 맑음을 남긴다

오늘

마음을 조금 내려놓는다

비가 그치면 세상은 더 맑아진다
그 맑음 속에서
가을은
이미 내 안에
고요히 머물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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