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커피 날벼락

살다 보면 우연한 일이

by 현월안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카페는 2층으로 꾸며져 있고 탁 트인 통유리창이 있는 곳이다. 창 너머로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넓고 예쁜 카페라서 즐겨 찾곤 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2층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다. 그런데 순간, 한 여인이 높은 구두를 신고 쟁반에 커피와 음료 세 잔을 들고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와장창,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얼음이 든 커피와 음료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 젊은 여자는 그대로 고꾸라졌고, 뒤를 따라 올라가던 나와 몇몇 사람들이 그 커피를 온몸으로 맞았다. 말 그대로 커피 벼락을 맞았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는 순식간에 옷이 다 젖어버렸고, 나는 그레이색 티셔츠에 얼룩이 번졌다. 검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 대학생은 그나마 경미했고 모두 피해자는 셋이었다. 나는 속으로 집에서 세탁하면 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싼 옷도 아니었고, 그저 편히 앉아 책을 읽으러 온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달랐다. 강하게 변상을 요구하며 끝내 싸움이 번지고 말았다.



카페 사장은 당사자끼리 알아서 하라는 이야기만 할 뿐 모르는 척하며 깨진 유리만 치우고 자리로 돌아갔다.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날 선 말을 주고받았다. 욕설까지 오갔으니 분위기는 더 이상 수습할 수 없을 만큼 험해졌다. 나는 살짝 옷에 튀긴 했어도 하던 대로 책을 펼쳐 들었고, 남자 대학생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던지 노트북을 켜고 공뷰를 하는 듯보였다. 그들 둘의 싸움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자리에 앉았지만, 싸움은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세탁비에 조금 더 얹어 합의한 듯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씩씩거리며 얼굴이 상한 채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리 맘 상하지 않았다. 그 여자에게 사과받지 않아도 괜찮다. 옷에 얼룩이 지긴 했지만, 세탁하면 사라질 것이고, 마음에 담아둘 일이 아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연한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원래 예측 불가능하다. 때로는 커피가 날아와 옷을 적시는 순간도 있고, 때로는 내가 누군가의 발을 밟거나 실수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살아 있다는 건 우연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그럴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며 따지고 맞설 수는 없다.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이 세상을 사는 일이다.



때로는 커피에 젖은 옷처럼, 마음에도 얼룩이 남을 때가 많다. 그 얼룩을 변상받아야 할 손해로만 여기면 세상은 삭막해진다. 삶은 언제나 계산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때로는 손해를 보고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와 넓은 마음이 있어야 삶이 조금 나의 편이 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성격과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어떤 이는 끝까지 따지고, 어떤 이는 담담히 넘기며, 또 어떤 이는 그저 관망한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서로 다른 태도가 부딪히며 갈등이 생기고, 또 때로는 이해를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연히 맞은 커피 벼락처럼, 인생에도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을 상대의 탓과 분노로만 받아들일지, 아니면 흥분하지 않고 상대방을 설득시킬지는 개인의 선택이고 순간의 자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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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흘러간다. 얼룩은 세탁하면 지워지고, 분노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 중요한 건 어떤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일 것이다. 나는 그날 커피가 내 옷에 튀었지만 마음에는 조금 더 넉넉한 깨달음을 품었다. 때로는 삶이 쏟아내는 우연한 일이, 더 깊은 성찰로 이끌어 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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