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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타는 여인

찬바람이 불면 인간이 본래 가진 외로움과 마주한다

by 현월안




엊그제까지만 해도 숨 막히는 햇볕이 온 세상을 덮었다. 뜨겁게 내리쬐던 태양 아래서는 외로움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릴 때, 그 뜨거움은 인간의 고독을 감추어 준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는 순간, 본능처럼 옷깃을 여민다. 몸이 움츠러드는 그 짧은 찰나에 마음도 함께 오그라들며 오래된 기억, 서운한 감정들이 서늘한 바람결을 타고 되살아난다.



계절마다 만족은 없다. 사람은 변화하는 자연에 적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가을은 생각을 깊이 파고드는 계절이다. 차가운 공기는 마음속 숨어 있던 외로움을 끄집어낸다. 왜 인간은 군중 속에서도 외롭고, 화려한 조명 아래서도 공허할까. 어쩌면 인간이 본래 혼자라는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일까. 아니면 잘 다스리지 못하면 옆길로 새게 하는 번뇌일까. 외로움은 생각 안에 있는 공허의 언어다. 결핍을 알려주고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끌어 내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깊이 대화하게 만든다. 느낄 수 있기에 인간이고, 생각할 수 있기에 외로움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을은 요란하고 찬란하게 아름답다. 총 천연색빛깔로 단풍이 세상을 물들이고, 바람이 잎새를 흔들 때마다 내면의 감정도 함께 출렁인다. 가을의 아름다움 뒤에는 외로움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그 그림자를 잘 다독이지 않으면 삶은 불필요한 무게로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을이면 외로움을 타는 여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 나, 가을 타나 봐요" 그녀는 언제나 가을의 깊은 외로움과 즐거운 갈등을 한다. 바람이 불면 더 요란해지고, 단풍이 짙어지면 더 격렬해지는 것처럼, 그녀는 가을 감정에 깊이 흔들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말로만 가을 탄다고 얘기할 뿐,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외로움을 껴안고, 또 남들보다 가을을 요란하게 맞이할 뿐, 그 속에서 한층 단단해진 가을을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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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말한다. 외로움은 두려워할 감정이 아니라,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은 양식이라고.

찬란하고 아름답게 물들일 올 가을 단풍이 또 어떤 절정을 보여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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