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풍경과 꽃과 마음이 머무는 곳
발걸음이 머무는 곳, 예쁜 사찰 '직지사'다. 김천에 갈 때마다 수없이 찾아 갔던 곳이다. 늘 편안하고 다정하게 맞아주는 절이다.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자리하고 있는 직지사는 내게도 어느새 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다. 시부모님이 아직 김천에 계시고 시댁에 갈 때마다, 친척의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 부부는 꼭 직지사에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온다. 이번에도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잠시 들렀다가 왔다. 그렇게 쌓인 기억이 직지사에 대한 애정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직지사 입구 숲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장관이다. 매번 계절마다 특별하게 옷을 갈아입고, 200m 남짓한 길은 내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그 길을 오래 걸은 사람만 아는 깊은 여운이 있다. 황악산이 고요히 감싸고, 직지사를 향해 걷는 이에게 평안을 준다. 누군가는 가족과, 누군가는 연인과, 또 누군가는 혼자서 그 길을 걷는다. 누구든 그 길 위에서는 같은 마음이 된다. 서두를 것 없는, 그저 숲을 누리는 편안함을 준다.
직지사는 역사의 무게를 품고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지만, 오랜 세월 다시 세워진 건물들은 고난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위안을 보여준다. 직지(直指)라는 이름처럼, 늘 우리 마음을 곧게 비추어 주는 거울 같은 자리다.
가을 직지사에서 만나는 배롱나무꽃은 특별하다. 대웅전을 지나 비로전과 사명각 앞에 다다르면, 수십 그루 배롱나무가 붉고 고운 꽃잎을 흔들며 맞이한다. 화려하게 군락을 이룬 풍경은, 사찰의 고즈넉한 건물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꽃이 절을 감싸 안은 듯 보이기도 하고, 세상이 온통 꽃으로 가득한 듯 착각이 들기도 한다. 꽃은 아름다움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잠시 머무는 삶의 찰나이자, 스스로 타올라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불꽃이다.
꽃무릇이 피어날 즈음이면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지고, 예쁜 배롱나무꽃이 내 마음에 화두를 던진다. 삶도 꽃처럼, 순간순간 피어나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꽃은 오래 머물지 않지만, 피어 있을 때는 가장 화려하고 절정을 보여주고 사라진다.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금의 빛을 다해 살아내는 것.
직지사는 언제나 깊은 가르침을 건넨다. 눈으로는 꽃을 보고, 마음으로는 고요를 느끼고, 발걸음으로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직지사에 가면 알 수 없는 감사함이 저절로 차오른다. 고요하게 받아주는 넉넉한 편안함은 말로 설명이 되질 않는다. 남편의 고향에서 마음을 품어주는 직지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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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김천을 찾을 때마다, 직지사 숲길을 걸을 것이다.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고, 꽃무릇이 붉게 타오르고 있고, 가을 단풍이 수놓은 길, 계절은 늘 변하지만 직지사는 한결같이 포근하게 거기에 있다. 직지사에서 걷는 걸음 하나하나에는 깊은 쉼을 주는 산책길이다. 조용히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감사의 시간이다. 직지사는 늘 풍경과 마음이 머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