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진심이 무르익어간다
가을은 풍요와 여유가 있다. 봄과 여름 내내 숨 가쁘게 치열했던 생명들이 이제는 한 박자 늦춰 걸음을 옮기고, 서서히 결실을 맺는 시간이다. 더 이상 높이 자라려 애쓰지 않고, 더 크게 가지를 뻗으려 무리하지 않는다. 제 안의 것을 정리하고 열매를 영글게 하고, 잎을 내어놓을 준비를 한다. 그것은 다음 봄을 위한 귀한 퇴장이다. 사랑이 깊을수록 이별이 아픈 것처럼, 가을이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는 숭고한 사랑이 들어있다.
햇살에 섞인 자외선은 숲을 더 빛나게 하고, 풀꽃과 단풍은 자신만의 색으로 마지막 찬란함을 발한다. 그 모습은 마치 한 사람이 삶의 무게를 감내한 뒤 드러내는 깊은 인격처럼, 고요하면서도 눈부시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젊음의 계절에는 늘 앞서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다. 빠른 성과, 눈에 보이는 열매를 원한다. 그러나 세월이 삶을 익히듯, 천천히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오랜 시간 철학서 토론하면서 알게 된 여인이 올해도 알밤 한 박스를 보내왔다. 매년 그녀의 고향 특산품을 구매하면서 내게도 보내준다. 공주는 알밤으로 유명한 고장이고, 알밤이 아주 맛이 있다. 내게는 귀하고 특별한 선물이고, 그녀의 마음이 담긴 계절의 편지다. 오랜 세월 쌓아온 인연이 보낸 것이라서 더 귀하다. 밤을 좋아하는 남편이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며, 보내준 이의 마음이 보이고 또 그 마음을 받으며 서로 나누는 정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풍요다.
삶아서도 먹고, 또 하얗게 까서 냉동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먹고, 삼계탕에 넣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그녀와의 인연은 알밤 때문에 더 돈독하고 달콤하다. 그때마다 달콤 쌉쌀한 추억이 입안 가득 번지고 사랑이 듬뿍 담긴 기억이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가을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사람의 마음 또한 가을을 닮아간다. 허투루 흘러가던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단단해지고, 오래된 인연이 풍성한 열매처럼 깊은 맛을 낸다. 그녀가 보내준 알밤 속에는 계절이 있고, 마음이 있고 함께 걸어온 오랜 시간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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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가을은 유난히 풍성하다. 단풍 색이 예쁘고 가을 햇살의 부드러움이 사랑스럽다. 가을빛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그녀의 마음이 내게 건네지고, 그 마음이 다시 나누어지고, 사랑이 삶의 결실로 익어가기 때문이다. 가을이 익어간다. 인연의 사랑이 무르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