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힘은 대단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던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컥한 감정이 있었다. 기쁨이라 부르기엔 너무 벅차고, 감동이라 하기엔 너무 뜨겁고, 자부심이라 하기엔 너무 오래 기다린 것이었다. 마치 나 혼자만의 사건이 아닌 것처럼, 동료 작가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심지어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서로 축하의 말을 건네며 환히 웃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쾌거였으나 동시에 모두의 기쁨이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작은 축제의 날처럼 느껴졌다.
기쁨의 순간과 함께 한국 문학의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다는 매체 보도를 보았다. 독서의 붐이 아직도 식지 않고 쭉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독서란 우연과 계기를 따라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고, 노벨상이라는 사건은 그 강에 새로운 합류점을 만들어 준 것이다. 독서의 붐이 일어난다는 것은 좋은 의미다. 언제나 문학은 읽는 이의 떨림과 설렘은 언제나 신선하다. 이미 문학에 깊이 빠져 책을 읽은 사람은 경험을 나누면 되고, 이제 읽는 사람은 앞으로의 길을 기대하면 된다. 중요한 건, 그 길이 함께 열린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에 발을 디딘다면 그것이야말로 눈부신 성취다.
작가들 중에 한국문학은 대단히 가치 있다고 말한 작가가 많았다. 이 말을 들을 때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지곤 했다. 한국문학은 외국문학을 따라 하기에 바쁘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편견의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삶을 걸고 써 내려간 서사, 스스로 상처 입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애도의 몸짓은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숭고한 것이다, 이제는, 그 말 앞에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받았다. 그것도 한국어로 쓰인 문학으로"
한강 작가의 수상은 한국의 작가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성작가들, 그리고 자본이 아닌 다른 가치를 믿어온 이들이 얻은 자부심이다. 문학이 협소하게 묶여 있던 시선을, 인간의 존엄과 기억, 애도의 보편성으로 넓혀주었다. 제주 4·3이나 광주 5·18을 다룬 한강의 글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슬픔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임을 이제 세상과 함께 읽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에는 이런 전환이 있다. '속솜허라'라는, 숨죽여 살아남아야 했던 얼어붙은 언어가, 한강의 문장에서 눈(雪)의 포근한 속살처럼 따스하게 감각된다. 폭력에 의해 얼어붙었던 말이, 문학의 손길에 의해 다시 온기 어린 숨결로 되살아난다. 카프카는 책이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강의 책들은 손을 잡고 이렇게 속삭인다. 얼어붙은 것을 끝내 녹여내자고, 함께 울 눈물을 준비하자고.
문학을 읽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마음이 유순해진다는 것이다. 고집스럽게 막혀 있던 귀가 열린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게 된다. 한 문장을 오래 붙들다 보면, 그 문장을 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문학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오래된 방법, 사람을 유순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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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여전히 문학의 열기가 계속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 힘을 다시금 체험하고 있다. 문학은 무용하지 않다. 문학은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열게 한다. 그래서 한국문학이 세상의 귀와 눈과 마음을 열었다는 사실이 반갑다. 때문에 다시금 붐이 생긴 문학의 열기는 사랑스럽고 철학적인 선물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