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 접어주는 여유
동네 카페에서 마주친 풍경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엄마와 아이가 앞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색종이 접기에 몰두해 있었다. 작은 태블릿 화면 속 손동작을 따라 하느라 두 사람 얼굴에는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아이는 서툰 손끝을 이리저리 굴리며, "엄마, 어떻게 한 거야?" 하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도 제대로 못 봤어. 다시 함께 보자" 아이는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다시 태블릿 화면을 바라본다. 순간 다시와 함께라는 말이 아이를 새로운 배움으로 데려갔다.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어우러져 종이 한 장이 기적처럼 형상으로 변해간다.
무언가를 접어본 순간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누군가에게 건넬 쪽지를 접고, 또 때로는 학을 접어내던 순간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종이를 곱게 접기보다 마구 구겨버리는 일이 많았다. 쓰다 만 원고를 무심히 구겨서 던져 버리는 일. 그걸 다시 펴내려고 애를 써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구겨진 종이의 자국은 지워지지 않듯, 삶에서의 소소한 감정이 깊은 주름으로 남곤 한다.
뭔가를 곱게 접지 않아도, 다른 방식으로 늘 접게 된다. 책을 읽다가 반으로 접고, 문장 하나에 마음을 내어주고 또 의견을 접는다. 그 순간 알게 된다.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고집을 꺾고 마음을 접을 때, 비로소 가벼워질 수 있다. 접는다는 건 더 본질적인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이다. 내 마음을 정리해 평정으로 이끄는 일이다.
한 수 접는다는 말의 깊이를 요즘 들어 자주 되새긴다. 상대에 맞추어 수를 낮추는 것은 언뜻 보면 양보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귀한 존중이 들어 있다. 상대의 세상을 먼저 인정하고, 그 틈에서 새로운 조화를 찾아내는 것. 인간관계에서 한 수 접는 일은 쉽지 않다. 종종 먼저 말하려 하고 선점하려고, 또 이기려고 달려든다. 그 틈에서 용기 내어 한 수를 접어 내려놓는 이가 진심으로 상대 마음에 전달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늘 한 수 접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웃을 수 있도록 내가 조금 물러서고, 상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내가 기꺼이 낮아지는 일. 그 순간 사랑은 더 깊이 번져간다. 내가 다가가지 않고는 결코 피어날 수 없는 관계에서, 한 수 접는 마음은 다시와 함께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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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엄마와 아이가 종이 한 장을 앞에 두고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함께 종이를 접으며 배워간 것은 서로의 세상에 한 수 접어 들어가는 법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 삶이라는 커다란 종이 위에서 저마다의 모양을 접어내고 있다. 구겨질 때도 있지만, 다시 펼쳐서 새로운 주름을 만들 수 있다. 사랑도 삶도, 끝내 곱게 접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내 안의 고집을 조금 접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네기 위해 종이를 편다. 한 수 접는 마음은, 사랑을 깊게 드러내는 언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