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관계를 엮는 일이다

직접 만든 그녀의 선물

by 현월안




설이 되면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 유년의 시간은 참 해맑았다. 명절이란 새 옷을 입는 날, 가족이 모이는 날, 그리고 세상이 잠시 멈추는 날이었다. 요즘처럼 언제든지 옷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옷 한 벌은 그야말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설날 아침, 머리맡에 고이 접어 놓은 새 옷을 보면 세상 무엇보다 설렜다. 그 옷을 입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며 거울을 보던 그 시간, 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부자였다. 그 옷 한 벌이 내 세상을 다 밝혀주던 시절이 있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서점이 넘쳐나거나, 스마트폰 속에서 언제든 글을 읽을 수도 없던 시절. 책 한 권은 마음을 울리는 선물이었고, 상상의 나라로 향하는 문이었다. 생일에 책을 선물 받으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마음이 자라나는 따뜻한 축복이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책을 품에 꼭 안고 뛰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설렘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감사를 표현하는 순수한 몸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선물이 넘쳐나는 시대다. 원한다면 몇 분 안에 무엇이든 살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언제부턴가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한다. 소유는 늘어났지만, 감동은 많지 않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받은 선물이 내 마음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데웠다. 글 쓰는 지인이 손수 떠준 목도리를 받았다. 엷은 베이지색 실로 정성스레 짠 목도리였다. 색상은 이른 저녁의 하늘처럼 차분하고, 손끝에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갈색 코트 위에 둘러보니, 아주 잘 어울렸다. 목도리는 따뜻하고 그 온기는 그녀의 마음과도 같았다. 그녀의 손끝이 머문 시간, 그녀의 생각과 호흡이 스며든 숨결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잠시 그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마트에서 산 물건은 돈으로 사면 끝나지만, 목도리는 시간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마음이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쓴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다. 그건 돈보다 더 귀하고, 오래 남는다. 나는 이번 설에, 나는 그녀에게 마트에서 산 선물을 건넸다. 그건 실용적이고 일상에 필요한 물건이지만, 거기엔 내 시간과 내 온기는 없다.



그녀가 내게 선물한 것은 정성의 깊이를 일깨워주는 조용한 철학이 들어있다. 그리고 물건을 직접 만들어서 선물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귀한 일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마음의 온도니까.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들이는 일, 그건 삶을 사랑하고 마음을 담는 일이다. 그렇게 삶은 서로의 시간 속을 지나며, 서로의 존재를 조금씩 덧대어 가는 일이다.



삶은 관계를 엮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을 엮고 마음과 마음을 잇고, 시간과 기억을 함께 엮어 하나의 무늬를 만들어간다. 때로는 엉키고 풀리고, 어떤 실은 끊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함께 짜여가는 존재로 함께한다. 그것이 관계의 아름다움이고 삶의 철학이 아닐까. 겨울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계절은 순하게 바뀌어가고 있다. 깃을 세워 그 목도리를 둘러본다. 지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따뜻한 선물은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을 것이다. 그건 삶이 서로에게 남길 수 있는 다정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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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시간을 조금 덜어내어, 마음을 감싸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관계의 온기다. 그 온기가 삶을 조금 더 포근하게 만든다. 그래서, 행복은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는 일에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