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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손녀로 이어지는 사랑

아름다운 생명의 힘으로 세상을 감싼다

by 현월안




늦은 점심, 낮의 소란이 모두 잦아든 칼국수 집의 텅 빈 공간은, 나지막하고 깊은 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점심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찾은 그곳에서, 세대를 잇는 세 여인의 조용한 드라마를 목격했다. 친정엄마, 딸, 그리고 세 살 정도 되는 손녀 가족은, 소박한 점심으로 가족의 사랑, 모성이라는 따뜻한 철학을 무언의 언어로 펼쳐 보이고 있었다.



세 살 손녀는 작은 숟가락 하나를 쥔 채 세상의 재미를 발견한 듯 작은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먹지 않고 장난치고 있었다. 그 아이를 조심스럽게 달래며 사이사이 밥을 먹이는 할머니. 그리고 그 맞은편에서 시선은 아이에게 고정한 채 국수 그릇을 비우는 딸. 이 평범한 풍경은 삶의 형태를 압축해 놓은 듯했다. 내 시선을 붙잡아 끈 것은, 바로 할머니 앞에 놓인 칼국수 그릇이었다. 내가 내 국수를 다 비울 때까지도, 그 그릇의 국수는 그대로였다. 아마도 면발은 퉁퉁 불어갔을 것이다.



그 불어버린 국수 한 그릇은, 그 어떤 웅장한 선언보다 더 절절한 헌신의 언어였다. 할머니의 허기는, 딸이 편안하게 한 끼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을 위한 것이었다. '어서 먼저 먹어라, 나는 괜찮다'는 고요한 희생의 마음이 그 식어가는 국물 위에 짙게 배어 있었다. 자신의 만족보다 사랑하는 이의 안녕을 우선하는 이 무조건적인 배려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적 가치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국수 그릇을 딸 쪽으로 살짝 밀어주면서, 더 먹으라는 눈빛으로 딸을 그윽이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모성이 빚어낸 영원불변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맞은편 딸의 모습 역시 사랑의 깊이를 알고 있음을 눈빛으로 말해준다. 그녀는 아이에게 할머니 말을 들으라고 달래고는, 허겁지겁 국수를 목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 바쁜 몸짓은 삶의 고비, 육아와 생활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진 젊은 여성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헌신을 최대한 빨리 완성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짧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 보였다. 친정엄마는 딸이 걸어갈 그 험난한 길을 이미 먼저 걸어본 인생의 선배로서, 딸의 고통을 말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알아차릴 수 있는 세상 유일한 딸편인사람. 딸을 향한 그 눈빛은 위로이자 축복이며,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이 장면은 오래도록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종종 재미로 '당신은 몇 살까지 살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 나이를 말할 때, 대부분 이루고 자 하는 일의 완수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것은 성취와 계획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산후조리를 마칠 때까지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하며 살았다. 이것은 나의 삶이 나의 성취가 아닌, 사랑하는 존재의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넘기는 것에 그 진정한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이다. 삶의 진정한 완성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소중한 이의 곁을 지켜주는 헌신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의미다. 칼국수집에서 만난 어머니처럼, 나도 나의 마지막 시간을 딸의 둥지 위에 기꺼이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친정엄마는 딸에게 있어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큰 영원한 둥지이다. 가족 형태가 아무리 달라지고 개인의 삶이 다양해져도,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절대적인 무게감과 안식처로서의 역할은 결코 퇴색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비난과 오해 속에서도, 언제나 온전히 내 편에 서서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보내줄 단 한 사람, 그가 바로 친정엄마다. 손녀와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자신의 국수가 식어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딸에게 편히 먹으라 손짓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딸의 행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인간적인 순애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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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식당 문을 나설 무렵, 국수를 다 먹은 딸이 어머니와 자리를 바꾸고 있었다. 이제는 딸이 어머니를 위해 아이를 돌보고 식은 국수라도 편하게 드시게 하려는, 사랑의 교대였을 것이다. 모녀 관계가 일방적인 헌신이 아니라, 순환하고 이어지는 사랑의 연결임을 보여주었다. 그날 늦은 점심에, 나는 칼국수 한 그릇 앞에서 펼쳐진 세 여인의 조용한 드라마를 통해 인간적인 삶의 깊고 따뜻한 철학을 배웠다. 무조건적인 이해, 소리 없는 헌신, 그리고 세대를 잇는 사랑의 의무. 친정엄마는 딸에게 영원한 안식처이고, 그 사랑은 세상의 어떤 철학보다도 강력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힘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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