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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 패랭이 꽃

사랑은 가장 강력하고 부작용 없는 명약

by 현월안




내가 아주 어릴 때, 병원은 먼 이야기였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다가 배가 아파도, 목이 따끔거려고 고열에 시달려도 나를 낫게 하는 마법이 있었다. 엄마의 만병통치약은 말린 패랭이꽃과 설탕 조금, 그리고 곶감 몇 개를 푹 고아낸 그 달콤한 물은 엄마가 만든 특효약이었다.



엄마가 아끼고 귀하게 다루던 재료로는 여름에 야생 패랭이 꽃줄기를 말려 두었다가 우리 형제들이 위급할 때 하얀 설탕과 곶감을 넣어서 달여 주셨다. 그 맛은 달콤함이 더해진 약간 쌉쌀한 맛, 나는 감기로 열이 나면서도 그 순간 묘한 행복감을 느꼈다. 혀끝에 감기는 그 맛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 정성스레 농축된 사랑과 신뢰의 맛이었다. 그 물을 마시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잠시 땀을 내고 나면, 신기하게 열이 내리고 찌뿌둥하던 몸살 기운이 씻은 듯 사라지곤 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어린 시절을 건강하게 보냈으니, 엄마가 만든 약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아깝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효능의 비밀은 성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믿음과 한결같은 사랑이라는 가장 강력한 약효 성분에 있다는 것을. 설탕물괴 곶감이 들어간 그 맛은 단지 엄마의 사랑이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지독한 감기가 찾아오면, 병원과 약국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지만,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엄마의 처방을 생각하며 미소 짓곤 한다. 한의원에 갈 일이 생겨서 의사 선생님에게 엄마의 비법을 물어보았다. 한의학에서 패랭이꽃 말린 것은 열을 내리는 데 사용하고 곶감은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고 설탕은 기운이 나게 하는 조합이라서 괜찮은 민감요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옛날 엄마가 뭔가를 알고 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약의 천국에 살고 있다. 세상은 온갖 정보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대화 속에는 어떤 약이 어디에 좋다는 정보 공유로 이어진다. 약이 없던 시절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모두가 약에 의존하며 산다. 약이 없다면 불안해서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시대에 살고 있다.



병원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증류수를 주사했더니 실제로 통증이 사라졌다는 플라시보 효과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옛날 우리 가족은 그 플라시보 효과를 맛본 것이다. 그리고 그 설탕물 역시 단순한 포도당 공급과 수분 보충의 효과를 넘어, 이것은 나를 낫게 할 약이다라는 굳건한 믿음을 마신 것이다. 마음이 특효약이라고 믿는 순간, 그 설탕물은 내 몸의 면역 시스템에 마법을 걸었던 것이다. 마음이 가진 믿음의 힘이 특별한 효과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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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부작용 없는 명약이다.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우리 몸에 얼마나 큰 활력과 치유의 에너지를 불어넣는지 잘 알 것이다. 약국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먼저 내 마음에게 강력한 비법을 걸어 본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 긍정의 믿음은, 약이 몸에 작용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낫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 옛날 엄마의 처방은 감기를 고치겠다는 사랑과 지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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