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감이 두렵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고민
세상을 살아가며 셀 수 없이 들은 말이 있다. 신청 마감, 원서 마감.. 그리고 원고 마감. 인생은 마감이라는 이름의 경계선을 따라 걷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에는 마감이 단지 끝나는 정도로만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그 말에는 묘한 깊이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마감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또렷해진다. 갈다 의 마(磨), 살피다 의 감(勘). 마감은 어떤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닌, 다듬고 살피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일이다. 예전의 마감은 관리의 근무 성적을 심사하거나, 과거 시험의 답안을 재검토하라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감은 평가와 성찰, 그리고 완성의 언저리에 있던 말이었을 것이다.
작가에게 마감은 숙명이다. 마감은 원고를 청탁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묻게 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그 약속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 언제나 느릿하게, 때로는 아예 반대로 흘러간다. 마감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문장은 꼬이고 시간은 더 잔혹하게 흐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계의 초침이 더 이상 미뤄둘 수 없음을 알릴 때 비로소 손끝이 움직인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생각은 정돈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는 사라진다.
가끔은 마감이란 단어를 들으면 벽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넘어갈 수 없는 한계선, 끝의 자리. 하지만 어쩌면 마감은 끝이라기보다 다듬어짐일지도 모른다. 건축에서의 마감공사처럼, 삶에서도 마지막 손질이야말로 전체의 결을 결정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보통 삶을 마감한다고 말한다.
담백한 표현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마감이라 부를 때, 그 말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삶이라는 원고를 다듬고, 교정하고 끝내는 일.
그것이 삶의 마감이다. 몽테뉴는 '수상록'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이 책을 읽는 이여, 여기서는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니 그대가 한가한 시간을 허비할 만한 것도 못 되리라. 그러면 안녕"
서문 끝에 안녕을 남긴 것은, 생의 끝을 예감하면서도 유쾌하고 단정하다. 삶의 마감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 모른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진심을 다해 '그러면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일.
삶의 긴 시간 속에서 마감은 단지 끝이 아니라, 자신을 갈고닦는 과정이다. 매 순간의 마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턱이고, 더 깊은 이해를 향한 수행이다.
마감은 삶을 단련시키는 감독이다. 냉정하고 때로는 독촉하고, 때로는 채찍질한다. 그 안에는 성장과 정화의 의도가 있다. 마감이 없다면 대부분 게으름의 안락함 속에 잠들고 말 것이다. 데드라인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마감은 닦달이면서 또 해결이다.
인생을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작은 마감들의 연속이다. 학기 말의 시험, 퇴근 전의 보고서, 관계의 마지막 인사, 계절의 끝자락... 그 모든 마감은 나를 다음으로 이끈다. 마감은 준비하는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문득 알게 된다. 인생의 마감은,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의 압축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조급함과 후회, 설렘과 희망이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마감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무언가를 쓴다. 삶은 끊임없는 초안이고, 마감은 그 초안을 조금씩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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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마감이 아직 두렵지만 그래도 괜찮은 고민이다. 그건 내가 여전히 다듬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니까. 마감은 조금씩 인간다워진다. 삶의 끝마저도, 어쩌면 또 하나의 다듬어짐일 것이다. 그날의 마감이 오기 전까지, 오늘도 묵묵히 다듬는다. 글을, 일상을, 그리고 나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