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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섬세한 예의가 필요하다

가끔 함께라는 것을 잊고 산다

by 현월안




동네 공원은 모두의 쉼터다.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서 공원은 잠시나마 자연의 품으로 데려다준다. 잔디밭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부드럽게 눌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바람결에 섞인다. 아침이면 조깅하는 이들의 숨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고, 해가 질 무렵이면 산책 나온 사람들의 넉넉한 여유를 가져다준다. 공원은 서로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한데 어우러지는 공동의 시간을 품는다.



우리 가족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공원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발 앞으로 동그란 흰 공 하나가 굴러왔다. 순간 깜짝 놀라 발을 멈추었다.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곳에 골프채를 든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잠시 스친 당황함과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재빨리 공을 주워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에서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가끔 그런 풍경을 마주한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 누군가는 골프채를 들고 공을 올려놓고는 조심스레 샷을 시도한다. 바람을 가르는 휙 소리, 잔디를 스치는 강한 감촉, 어딘가로 튀어 오르는 작은 공 하나. 그 순간, 그들에겐 아마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사소한 해방일지도 모른다. 바쁜 도시 속에서 자신만의 취미를 즐기려는 마음일 것이다.



공원은 사로의 공간이다. 함께라는 말은 생각보다 섬세한 예의를 요구한다. 누군가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조금 멈춰 서는 일, 그것은 사람이 배려하며 살아가는 최소한의 격이다.



며칠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벙커샷을 연습하는 남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모래를 퍼내는 그의 동작은 마치 실제 라운딩이라도 하는 듯 진지했다. 그러나 그 뒤편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모래놀이를 하고 싶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들. 그 장면은 사회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신사의 운동이라 불리는 골프는 예절과 절제를 중시하는 스포츠다. 자신의 스윙을 가다듬기 전에, 함께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그 정신이 사라진다면 아무리 세련된 골프채를 가지고 있어도, 그건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는 무례의 스윙이 될 뿐이다.



가끔 모두 함께라는 단어를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공원에서도 또 버스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각자의 편의만 앞세운 행동이 너무 흔하다. 스마트폰 화면 속의 세상에 몰입한 나머지, 바로 옆 사람의 표정조차 읽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걷고, 누군가의 미소에 마음이 풀린다.



공원에선 아이들이 뛰놀고,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다. 그 풍경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하루를 이어간다. 그 잔디 위를 함께 밟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함께 사는 기쁨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수많은 차이와 개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배려와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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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의 행동은 서로 모두의 거울이다. 누군가의 스윙 소리 하나에도 세상의 온도가 달라질 수 있다. 내 안의 마음이 다른 이의 평화를 헤치지 않기를. 또 내가 밟는 잔디가 누군가의 쉼을 흔들지 않기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서로의 조심스러운 발걸음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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