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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뭘까

그리움은 안에서 맑은 침묵으로 자란다

by 현월안



글 쓰는 지인이 커피를 마시다가 대뜸 "그리움이 뭐라고 생각해요"라고 내게 묻는다. 얼떨결에 글쎄요 뭘까요? 했다. 그녀는 친정엄마를 떠나보내지 얼마 안 됐다. 아마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묻는 마음일 것이다. 사실, 그리움은 말보다 빠르다. 아직 한마디의 언어도 입가에 맴돌기 전, 그리움은 이미 몸속에서 전율처럼 흐르고 있다. 그것은 설명되지 않은 채 느껴지는 것,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숨결이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에서 부르는 또 다른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기생 시인 매창의 그리움이 그러했다. 그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단어를 세밀히 다듬고 붓끝을 떨리듯 움직여도, 결국 남는 것은 다 표현할 수 없음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리움은 언어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말이 닿을 수 없는 그 여백에, 삶의 신비가 스며 있다. 그 빈자리를 통해 비집고 들어온다.



그리움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사랑이 그렇듯, 그리움도 소유의 언어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잃어버림을 감당하는 일이고, 결핍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리움은 결핍의 그림자이면서 또 충분의 결이다. 그 모순 속에서 인간은 성숙해지고, 또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엮어 나간다.



말과 침묵 사이에 있는 그 공간, 그곳에서 그리움은 가장 선명해진다. 홀로 있는 시간 속에서 관계를 벗어나, 순수한 나로 돌아온다. 그리움은 그 침묵의 언어다. 말을 멈춘 순간, 마음은 더 깊은 대화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세상의 소리가 멀어질수록 내면의 숨결이 또렷이 들려온다.



천년 묵은 절에서 매창이 마주했다는 것은 침묵이었다. 매창이 그곳에서 산사의 고요와, 침묵의 기운이었을 것이다. 그리움은 대상에 대한 욕망을 넘어, 존재 자체와 마주하는 자리. 그곳에서 그리움은 더 증폭되고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리움은 상실에서 비롯되지만, 상실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은 더 깊은 이해로 이끈다. 고독 속에서 마음은 서서히 치유되고, 슬픔은 새로운 의미로 변형된다. 매창의 침묵은 억눌림이 아니라 성찰이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의 내면을 꺼내어 다듬고,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그리움은 그 여정의 불씨였다. 스스로를 태우고 빛을 내는 내면의 숨결.



사랑은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랑은 완성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불완전 속에서 자란다. 서로를 향해 손을 뻗지만, 완전히 닿을 수 없다. 그 간격이 바로 그리움이다. 그 거리를 통해 사랑은 형태를 얻고, 존재는 의미를 가진다. 매창의 시가 말하고자 한 것도 바로 사랑의 본질이다. 말할 수 없음 속에 가장 진실한 마음이 숨어 있듯, 그리움은 말보다 깊은 사랑의 방식이다.



그리움은 개인의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과, 세대와 세대를 잇는 보이지 않는 연결이다. 산사에서 수행하던 옛사람들의 고독은 수련이고, 그것은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매창이 오래된 산사에서 그 고독의 순간은, 사실 인간 모두가 겪어야 할 내면의 순례였다. 그리움은 그렇게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인간의 수행이 아닐까 한다.



그리움은 애달픔이기보다. 그것은 세상을 울리는 침묵의 진동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언어를 넘어선 사랑의 울림이다. 매창이 바라보던 가을 산은, 자연의 수려한 풍경이었고, 그것은 존재의 본질이 드러나는 자리, 인간이 홀로 서서 자신과 세상을 다시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그리움은 안에서 맑은 침묵으로 자란다. 그것은 언어가 닿지 못하는 마지막 여백이고,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사랑의 방식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을 품은 자만이 진정 사랑할 수 있다. 그리움은 침묵 속에서 피어난 꽃이고, 그 침묵이야말로 삶을 울리는 가장 큰 은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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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아프게 하는 것은, 아직도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그리워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 끝내 닿지 못하더라도, 그리움 속에서 서로를 느끼고 확인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그리움은 서로를 향해 가는 따뜻한 증거다. 그리움은 말의 끝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침묵이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여전히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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