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은 지금 공사 중이다
아랫집은 지금 공사 중이다. 한 달 기간을 가지고 리모델링을 한다고 공지를 했다. 며칠 전부터 시작이었으니 크고 작은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아침부터 또 공간이 울린다.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 망치가 벽을 두드리는 둔탁한 진동, 먼지가 일어나는 듯한 부스럭거림까지. 층간을 넘어오는 그 소리는 마치 한 편의 불협화음 교향곡 같다.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소음 앞에서는 그 하루하루가 묘하게 길게 느껴진다.
사실, 살아가며 주위에서 이런저런 공사는 수도 없이 겪었다. 옆집이 욕실을 뜯어고칠 때도 있었고, 윗집이 바닥을 새로 깔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잠시 시끄럽겠지 하며 버텼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더 크게 들린다. 같은 소음인데도 내 귀에는 훨씬 더 거칠게, 더 요란하게 들어온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우리 집을 리모델링을 할 때는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다른 이가 공사를 하니까 언제 끝나나 하며 조바심이 난다. 어쩌면 불편이라는 감정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아랫집 소음이 잔잔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피할 수 없다면 방향을 바꾸면 된다. 글을 쓰는 일은 카페로 옮겼다. 낯선 공간에서의 글쓰기는 의외로 좋았다. 커피 향이 은은히 감싸는 오후, 이따금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커피잔의 소리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또 덕분에 오래 만나지 못했던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밥을 먹고 차도 마셨다. 그렇게 불편은 만남의 이유가 되었고, 소음은 대화의 시작이 되었다.
공사 소리 덕분에 나는 또 다른 공간을 찾았다. 대중목욕탕을 평소라면 잘 가지 않았을 곳이다. 대중목욕탕에 갔다. 하지만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앉아 있자니 신기하게 마음이 고요해졌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아무 말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거기서 묘한 깨달음은 소음도 침묵도, 결국은 삶의 리듬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삶은 어쩌면 거대한 공사 현장과 같다. 낡은 벽을 허물고, 오래된 것을 새로 세워야만 하는 시간들이 있다. 그 과정은 언제나 소란스럽고, 때로는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소란 끝에는 반드시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 사람은 늘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의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완성된 결과만 바라보며 과정의 불편함을 피하려 하지만, 사실 그 불편함 속에만 진짜 배움이 숨어 있다.
살아보니, 인생이란 계산되지 않고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손해인 듯 보이는 일이 언젠가 이익이 되고, 괴로웠던 경험이 훗날 가장 귀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아래층 공사 소리처럼 거슬리고 번거로운 일들이 사실은 한 걸음 다른 세상으로 옮겨놓는다. 그 소리 속에서 새 일상을 만들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본다. 그러니 불편은 또 다른 변화의 신호다.
삶은 언제나 변수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변수는 나를 향한 좋은 기운으로 또 그렇지 않은 일로 다가온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수는 이제 지금과는 조금 다른 리듬으로 살아보라는 신호일 것이다. 그 신호를 불평으로만 받아들이면 그저 소음으로 남겠지만, 마음을 열면 그것은 또 다른 방법이 된다. 삶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또 다른 삶의 멜로디로 바뀐다.
이제 공사 소리를 듣는다기보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들으려 한다. 벽 너머의 그들은 낡은 집을 고치고, 더 나은 삶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망치질은 당신은 요즘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냐고 묻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끄러운 소리마저 조금은 다정하게 들린다.
삶은 상생의 연습이다. 누군가의 변화가 내 평온을 흔들 수 있고, 내 일상이 또 다른 이의 소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그 불편을 견디고 받아낼 때, 세상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완벽한 고요가 아니라,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만들어지는 조화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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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끝, 공사 소리가 멎고 밤이 내린다. 그제야 집 안이 고요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제는 그 고요가 오히려 낯설다. 낮의 소란이 사라진 자리에 작은 여운이 남는다. 삶이란 서로의 소리를 견디며, 각자의 리듬을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