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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떨림

삶에서 흔들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by 현월안




늦가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고요한 질서 속에서 반짝인다. 하지만 그 빛의 평온함 뒤에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숨어 있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고, 모든 별은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인간은 그 미세한 흔들림을 느끼지 못한 채 별자리를 영원이라 부른다. 그런데 진실은 조금 다르다. 하늘도, 강물도, 사람의 마음도 완전한 정지는 없다. 사랑도 그 질서 속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흔들리며 피어나고, 뒤틀어지고 사라진다. 그 흔들림이 사랑의 본질이다.



플라톤은 사랑을 진리로 향하는 연결이라고 했다. 그는 육체의 욕망에서 출발하여 영혼의 사랑으로, 마침내 아름다움 그 자체로 이어지는 여정을 말했다. 그 여정은 인간이 감각을 넘어 본질로 향하는 길이다. 하지만 흔히 경험하는 사랑은 그 숭고한 여정의 그림자에 가깝다. 인간은 이데아의 세상에 닿지 못한 채, 그 그림자가 머문 자리를 더듬는다. 그러나 그 그림자조차 없었다면, 빛이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낙엽이 떨어지며 덧없음을 말하듯, 또 한때 푸르렀던 생의 증거를 남기듯, 사랑의 흔들림 속에서 어렴풋이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기억한다.



사랑은 질서 속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리스의 오래된 신화에서 보면, 세상이 태어나기 전, 모든 것은 카오스였다. 혼돈이 곧 잉태였고, 무질서가 곧 가능성이었다. 그 어둡고 거대한 품속에서 대지가 태어나고, 하늘이 세워지고, 마침내 사랑의 신 에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은 질서가 아니라 혼돈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온다. 어느 날 불현듯 스친 눈빛 하나가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익숙하던 일상이 뒤틀린다. 그때부터 모든 사물은 새롭게 보이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가 시간의 결을 바꾼다. 그 혼란이야말로 사랑의 시작이다. 강물이 제 길을 찾기 전에 먼저 소용돌이치듯, 사랑도 처음에는 혼돈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혼돈은 사랑 속에서 미처 몰랐던 자신을 만나고, 이전에는 닿을 수 없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영원한 질서의 상징이라면, 카오스는 그 질서를 낳는 원초적 숨결이다.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 안에서는 하나가 된다. 사랑은 이데아처럼 영원을 향해 뻗어가지만, 언제나 카오스처럼 불안하게 시작된다. 인간은 그 두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다. 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안정과 떨림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연약하고도 아름다운 존재.



강물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만, 그 표면은 끊임없이 부서진다. 낙엽은 죽음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다음 계절의 생명을 품고 있다. 별빛은 영원을 상징하지만, 사실은 떨림과 흔들림의 결과다. 그 떨림이 없었다면, 인간은 별을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흔들림 속에서만 존재하고, 무너짐 속에서만 아름답다. 끝내 기울고 사라질지라도, 그 흔들림 속에서 영원을 향한 그리움을 배운다. 어쩌면 그리움이란, 마음속에 남은 이데아의 잔향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끝난 뒤 남는 것은 종종 엉켜 있는 기억들이다. 잘못된 문장 같고, 해답 없는 방정식 같고, 지워지지 않는 낙서 같다. 그러나 그 흔적들 속에도 빛이 숨어 있다. 그 조각이 있었기에 아름다움을 사유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의 실패는 또 다른 탄생의 전조다. 별이 카오스의 폭발 속에서 태어나듯, 끝난 사랑의 여운은 새로운 생을 준비한다.



철학은 영원의 질서를 말하고, 신화는 혼돈의 생성을 일러준다. 그러나 삶은 그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피어난다. 사랑은 그 경계의 불꽃이다. 살아낸 사람에게 남는 것은 결국 한 장의 낙엽, 흐르는 강물, 그리고 밤하늘의 흔들리는 별빛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이데아이고, 여전히 움직이는 카오스다.



늦가을 별빛을 바라본다. 차가운 바람이 낙엽을 데리고 흐르는 물 위로 내려앉는다. 물결은 빛을 부서뜨리며 반짝이고, 그 부서진 빛이 내 마음 깊은 곳을 흔든다. 눈을 감으면 그 흔들림이 겹쳐 하나의 울림이 된다. 그 울림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사랑의 시작과 끝, 그 모든 시간은 정지하지 않는다. 사랑은 머무르지 않고 흐르며, 기울어지며, 다시 피어난다.



별빛이 흔들리기에 별을 본다. 낙엽이 져야 봄이 온다. 그리고 사랑은 흔들려야 다시 사랑을 배운다. 흔들림은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생의 문턱이다. 혼돈을 견디는 용기, 흔들림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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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의 별자리와 혼돈의 강물이 동시에 흐르는 ,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그 중심에서 피어나는 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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