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먹고 냉면 먹고
요즘 가을 단풍이 참 예쁘다. 햇살은 부드럽고, 바람은 제법 서늘하다. 이런 날엔 괜히 마음이 느려지고, 일상의 결이 고운 빛으로 보인다. 일요일 오후, 그리고 바쁜 아들이 모처럼 한가한 날, 아들이 냉면이 먹고 싶다는 그 한마디에 우리 가족은 별다른 계획 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가까이에 있는 맛집으로 향했다. 고기맛이 일품이고 냉면도 직접 뽑아내는 곳이라서 냉면 맛이 특별한 곳이다.
가게 문을 들어서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난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는 소리, 연기가 그윽하게 피어오르는 풍경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 사이를 오가며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익숙한 소란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식탁 위에 고기가 놓이고, 불판 위에서 서서히 색을 입어 간다. 고기 굽는 담당인 남편은 여전히 손이 바쁘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으며 '이건 조금만 더 익혀야 해'하며, 그 말에는 시간이 녹아 있고, 사랑이 묻어 있다. 남편은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예전 이야기를 꺼낸다. 아들이 어릴 때 고깃집에서 잘 먹던 기억을 꺼냈다. 아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시간을 함께 익혀간다.
가족이라는 건 이런 시간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존재다. 멀어진 마음도 따뜻한 음식 앞에서는 천천히 가까워진다.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구워준 고기를 조심스레 권할 때, 그것은 말 없는 사랑의 언어다. 음식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때, 마음도 함께 풀린다.
배가 부르니까 세상이 부드럽게 보인다. 우리는 셋이서 조용한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은한 조명 아래서 맥주 딱 한잔씩을 즐긴다. 매주잔이 서로에게 부딪칠 때마다, 투명한 소리 속에 작은 웃음들이 피어난다. 아들의 웃음에는 젊음이 있고 남편의 웃음에는 푸근함과 여유가 묻어 있다.
사랑은 언제나 이렇게 평범한 모습을 하고 찾아온다. 화려한 말도, 큰 선물도 그리 필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따뜻한 조명 아래,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나누는 한 끼의 식사 속에 있다. 느리게 흐르는 대화 속에 배어 있는 진심과,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는 배려가 사랑이다.
살다 보면 가족에게조차 서운할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던지고, 꼭 전해야 할 마음은 삼키기도 한다. 그래도 가족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에 놓아진다. 그것이 피로 연결된 가족이다. 이유 없는 미안함이 머무는 마음, 말 없는 용서가 가능해지고. 가족은 따뜻한 식탁 하나면 충분하다.
특별한 기념일도 대단한 계획도 없던 날 그럼에도 그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고기 굽는 냄새가 가족의 대화 속으로 스며들고, 맥주잔 위로 부서지는 조명이 서로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 순간의 모든 것이 함께 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거창한 행복보다, 작고 평범한 순간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고기 한 점에 담긴 정성과, 웃음 사이에서 피어나는 온기. 그 모든 것이 가족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 있다.
삶이란 때로 고단하고 버거운 여정이지만, 그런 날에도 돌아갈 식탁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삶의 위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단한 울타리, 그 울타리의 이름이 가족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을밤의 공기가 스며든다.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달빛이 도로 위를 부드럽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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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불 위에서 고기가 익듯, 서로의 마음도 천천히 익어가는 시간. 그 향기와 온기를 간직한 채,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단단한 이름,
그것이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