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비가 내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의 장마처럼, 삶의 무게가 한없이 가라앉는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탄탱고'는 그런 빗속에서 시작한다. 교회도 없는 마을에 종소리가 울리고, 잠자던 사람들은 불길한 기운에 눈을 뜬다. 가난과 불신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버린 집단농장의 사람들. 그들은 하루하루를 겨우 견디며 살아간다. 희망은 오래전에 부패했고, 절망조차 습관이 되어버린 곳. 그런 그들에게 한 소문이 찾아든다.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가 돌아온다는 것.
그는 한때 마을을 이끌던 인물이었다. 냉철하고, 신비롭고, 어딘가 초월적인 아우라를 지닌 사람. 사람들은 그가 돌아오면 무너진 마을이 다시 일어설 거라 믿는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그 믿음은 얼마나 허망한가를.
이 소설의 무대는 공산주의의 끝자락, 1980년대 헝가리의 어느 농촌이다. 체제의 붕괴와 함께 삶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 그들은 공동체의 잔해 속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속이며 하루를 버틴다.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고,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들려오는 '이리미아시'가 돌아온다는 소식은, 절망 속에 던져진 마지막 미끼다.
세상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어리석음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무늬를 본다. 절망을 끝까지 경험한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환상을 얼마나 간절히 붙잡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은 그 미끼를 문다. 그들은 기꺼이 속고 싶어 한다. 그것만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리미아시'의 귀환은 구원의 시작이 아니라 파멸의 예고다.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착각하지만, 그는 냉소적인 관찰자일 뿐이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는 마치 '탱고'의 스텝처럼 요란하고, 리듬은 매혹적이지만, 끝내 그 춤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앞으로 여섯 걸음, 뒤로 여섯 걸음. 그대로 삶의 비유가 된다. 인간은 그렇게 한 발짝 나아가는 듯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존재.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의 늪. 그것이 '사탄탱고'의 비극적 아름다움이다.
라슬로의 문장은 많이 느리다. 긴 문장들이 쉼표 없이 이어지고, 마치 안갯속을 걷는 듯한 리듬으로 독자를 이끈다. 그러나 그 느림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서 독자는 세상의 숨소리를 듣는다. 문장 속을 스며드는 침묵, 끝없이 떨어지는 빗소리, 종소리, 그리고 인간의 헐떡임. 라슬로는 언어로 절망의 풍경을 그려내고, 그 속에 미세한 인간의 온기를 숨겨둔다.
사람들은 이리미아시가 가져올 미래를 상상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공동체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환상.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진다. 결국 그들은 또다시 배신당하고, 또다시 거짓된 구원 앞에 무릎 꿇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해 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슬로가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사탄탱고'는 바로 그 지옥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지옥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썩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한 절망 속에서도 사랑, 욕망, 기대, 그리고 희망을 꿈꾼다. 그 희망이 허상일지라도, 그것을 붙잡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존엄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탱고의 원 안에 갇힌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춤은 미친 듯 어지럽고, 리듬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 인간이라는 존재의 집요한 생명력이다.
라슬로의 '사탄탱고'는 단순한 체제 비판의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 감춘 순환하는 비극, 구원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내려는 의지를 다룬 묵시록적 서사다. 그는 몰락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삶의 근원을 탐구한다. 파괴된 세상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희망하는 존재'로 남아 있음을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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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세상은 다시 젖는다. 그러나 그 젖음 속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자, '사탄탱고'가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진실이다. 절망의 끝에서도, 인간은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희망이 허망할지라도, 그 속에만 인간의 온기가 깃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