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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더해가면서 알게 되는 것들

나이 든다는 것은 삶의 무게와 시간을 좀 더 다정하게 품는 일

by 현월안




어느 순간부터 나이를 더해가면서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보면, 대화의 주제가 달라진다. 젊을 때는 세상 이야기, 아이 이야기, 일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이제는 모임에서 가장 먼저 오가는 말이 "건강은 괜찮아?"다. 누군가는 흰머리가 늘었다며 웃고, 누군가는 노안이 와서 휴대전화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말한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오르고, 혈당이 조금 높아졌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젠 그런 이야기가 서글프지 않다. 오히려 서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럴 나이잖아." 누군가의 한마디가 그저 위로로 들리고, 그 진심이 마음에 스며든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4세를 넘어섰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제 백세 시대가 먼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오래 사느냐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건강은 더 이상 젊은 날의 특권이 아닌, 매일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작품이다.



며칠 전 모임에서 또 한 사람의 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늘 활기차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병상에 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았고, 생각보다 병이 깊어서 놀랐다. 의학은 발전하고, 문명의 이기는 생명을 연장시키지만 그만큼 병에는 더 많이 노출된다. 세상에 먹을 것은 많아졌지만, 이제는 욕심을 내서 먹지 못한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때다.



나는 요즘 식탁에서 저속 노화 식단을 실천하려고 힘쓴다. 백미 대신 현미를, 흰 밀가루 대신 통밀을, 달콤한 케이크 대신 신선한 샐러드를 고른다. 처음엔 불편하고 낯설었다. 그런데 마음먹으니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기하게도 손이 먼저 채소로 향한다. 소식을 하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맑아진다. 배를 덜 채우는 대신, 하루를 더 깊이 느낀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드는 그 단순한 진리를 진심으로 요즘 깨닫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의 무게와 시간을, 조금 더 다정하게 품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젊음은 빠름에 익숙하고, 시간을 좀 쓴 이는 느림을 이해한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느림은 지혜의 다른 이름이다. 조금 덜 먹고, 조금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오래 숨을 고르는 일이다. 그것은 노화를 저속으로 가게 하는 삶의 예술이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다. 주름이 생기고, 머리칼이 희어지는 것이 불행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모든 흔적이 살아왔음의 증거다. 젊음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나이를 더해가면 그보다 삶을 깊이 볼 수 있다. 젊은 시절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했지만, 이제는 세상을 내 안으로 들이는 시간이 되었다.



삶의 속도를 늦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저녁노을의 색감이 이렇게 다채로웠던가 싶고, 차 한 잔의 향기가 이렇게 풍요로웠던가 싶다. 젊을 때는 지나쳤던 작은 기쁨들이 다양하게 하루를 채운다. 그 속에서 느끼는 평온은 건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나이 들어가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세월 앞에서 시간을 거스르려고 몸부림치고, 어떤 이는 그 속에서도 고요를 배운다. 흰머리를 감추기보다, 그 속의 세월을 품고 싶고 노안을 탓하기보다, 느리게 읽는 기쁨을 배우고 싶다. 몸의 변화에 맞춰 마음의 속도를 조절하고 그것이 나이 듦의 품격 아닐까 싶다.



건강이란 몸과 마음의 조화다. 식단을 바꾸고, 운동을 하고, 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한 건 삶을 대하는 방향이다. 나를 아끼고, 순리의 이치를 알고, 욕심을 덜어내는 의미 말이다. 이제 하루 세끼 식사 속에서도 철학을 배운다. 한 접시의 샐러드 안에, 지금을 사는 지혜가 있다. 한 모금의 물 안에, 비움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이 듦은 오히려 삶의 해석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젊은 날의 열정이 불꽃이었다면, 지금의 은은한 향기로 남고 싶다. 크게 타오르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주변을 밝혀 주는 빛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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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언젠가 나이 든 모습이 된다. 그때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서 있을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만든다. 오늘도 느리게 먹고, 천천히 걷고, 조금 더 깊이 숨을 쉰다. 그 속에서 내 안의 젊음은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노화는 멈출 수 없지만, 좀 더 나이 듦의 방식은 품격 있게 새로 쓸 수 있다. 그것이 건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여유 있게 나이 들어가는 일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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