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의지가 나를 다시 살린다
사람의 몸속에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수리공이 살고 있다. 이름은 '텔로머라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닳아가는 염색체 끝, 텔로미어를 살며시 덧대 주며 시간을 조금 더 벌어 준다. 흘러가는 생물학적 시계를 잠시 붙들어 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수선공이다.
놀라운 건 이 작은 존재가 생각에 귀를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마음이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 세포가 더 활발히 움직인다고 한다. 내가 품는 의지와 꿈을 섬세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듯이. 살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삶의 연결이다.
몸도 마음의 편을 든다. 인생에 작은 목표가 생기고, 가슴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활짝 기지개를 켜면 세포도 그 온기를 알아차린다. 의지의 불씨가 몸속을 은근히 덥히고, 생명은 그 열을 따라 다시 걸음을 뗀다. 인간이란 참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존재다. 희망이 생명을 부르고, 마음의 방향이 세포의 리듬을 바꾼다.
거창할 것도 아닌, 누군가를 웃게 하고 싶은 마음, 하루를 더 부드럽게 살고 싶은 다짐, 스스로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려는 결심. 그런 사소한 의지들이 몸속에 잔잔한 진동을 일으킨다. 작은 희망이 쌓여 삶을 지탱하는 토대가 되는 것처럼, 하루 한 걸음의 마음가짐이 생명의 속도를 바꾸어 준다.
'왜 사는가'라는 물음은 철학의 질문이지만. 나의 혈관을 흐르고, 세포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작동하며, 오늘을 살아내는 한 사람의 체온 속에서 작동한다. 마음이 목적을 잃고 어지러울 때 몸도 길을 잃는다. 반대로, 비록 더디더라도 내가 향하는 방향이 분명할 때 몸은 그 길을 함께 걸어 준다.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듯, 또 살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이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보고 다가오는 설렘,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미래. 그런 것들이 내 안에서 생명을 키우고,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힘이 된다.
살다 보면 마음이 흐려질 때가 있다. 세상이 무거워 보이고 길이 막힌 듯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의지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는가. 그리고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질문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은 이미 그 진심을 알아차리고, 아주 느리지만 다시 살려낸다.
내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을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스스로를 더 부드럽게 감싸 안고 싶다. 그 마음이 삶의 손길일 테니까. 오늘도 내 몸에서 텔로머라제는 조용히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리공 혼자서는 충분하지 않다.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을 속삭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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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또 내일의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의지. 그 단순한 의지가 삶을 길게 또 따뜻하게 만든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다정한 응원. 그것이 나를 다시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