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독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오랜만에 제자 다섯 명이 문예창작을 가르치던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암투병 중이셨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 앞에 서 있는 순간부터 마음이 묘하게 떨렸다. 오랜 인연 앞에서는 시간이 늘 조금 느리게 흐른다. 문이 열리고, 야위신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병이 깊숙이 교수님의 체구에 내려앉은 듯 보였다. "건강은 어떠세요?" 조심스레 여쭈었다.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대답하셨다. "몸은 괜찮아. 마음이 힘들어"
그 한 문장에 긴 세월과 깊은 외로움이 스며 있었다. 은퇴 후 사모님을 먼저 떠나보내고, 암과 싸우며, 조용히 책을 읽으며 긴 시간을 견뎌내신 듯했다. 이제는 고독과 친구가 되었을 줄 알았는데, 교수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늙어서 고독사를 왜 하는지 알겠어, 이렇게 혼자 죽으면 그게 고독사야"
나지막한 목소리에 바람이 스미듯이 서늘함이 번졌다. 제자들을 환하게 반겨 주시면서도 문득 그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들춘 듯한 표정.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찡하게 울렸다. 연락을 자주 드리지 못했던 지난 시간이 송구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반겨 주시는 따뜻함이 감사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단단해진다고. 그러나 세월이 단단하게 만드는 건 마음이 아니라 참는 법 일지 모른다. 마음은 오히려 더 여려진다. 작은 슬픔에도 쉽게 흔들리고, 사소한 외면에도 오래 상처를 입는다. 사랑했던 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남는다는 것은, 큰 용기와 깊은 상처를 동시에 선물 받는 일일 것이다. 교수님은 "친구들이 많이 떠났어. 남은 자의 고독이지. 삶은 고독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 말이 오래 머물렀다. 남은 자의 고독. 그것은 어쩌면 삶이 끝날 때까지 품고 가야 하는 가장 오래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지적으로 뛰어난 이가 고독에서 두 가지 선물을 얻는다고 했다.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 그리고 자유. 그러나 고독이 늘 성찰과 자유 속에 때론 가슴을 꿰뚫는 냉기처럼, 겨울의 찬 어둠처럼 인간을 잠식한다.
가을 끝자락, 바람이 서늘해지는 시기다. 공원에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나무들은 초연한 표정으로 잎을 놓아주고 있다. 스산함 속에도 묘한 평온이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계절보다 연약하다. 바람 한 줄기에도 무너질 때가 있고, 찬 기운이 스치면 옷깃을 여미듯 마음도 단단히 닫힌다. 외로움이 문득 스며드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외로움은 인간의 약한 부분을 갉아먹기도 하고, 서늘한 감정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품고 태어난 본성이다. 사랑해도 외롭고, 곁에 있어도 허전한 이유가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그 고독을 어떤 색으로 물들일 것인가 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회색으로, 누군가는 검은색으로. 그러나 언젠가 그것을 은은한 금빛으로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오래된 상처를 품은 이의 미소처럼, 깊은 밤을 건너온 새벽처럼 말이다.
교수님은 여전히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가볍게 걷는 운동을 하신다. 고독과 외로움과, 함께 걸어가는 중일 것이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 그 길 위에 선다. 그때 마음이 너무 시리지 않도록, 지금의 온기를 가득 품어 두면 좋겠다. 그리고 고독과 외로움 속에 있을 때 조용히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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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랑을 잃어가며 사랑을 배워가는 여정이다. 외로움은 사랑했던 시간의 그림자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삶은 고독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고독을 사랑으로 물들일 수 있다면, 혼자가 되는 순간에도 완전히 비어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