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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갓길에 스며든 은은한 불빛

작은 불빛에 담긴 철학

by 현월안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하루하루 매서워지고 있다. 해는 짧아지고, 도심의 불빛도 아침저녁으로 더욱 깊게 번진다. 대부분 차를 가지고 이동하지만 그날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늦은 귀가 시간이었다. 지하철 역 바깥은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놀이터와 건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번지지만, 모든 어둠을 걷어 낼 만큼 넉넉한 빛은 아니다. 조금 늦은 귀가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걸음이 빨라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고 길 위의 작은 기척까지 귀에 담게 된다. 밤의 골목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조용할수록 마음속 그림자는 길어진다.



얼마 전, 그 어둠 속에서 든든한 작은 빛을 만났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아, 바닥에 선명하게 박힌 '안심 귀갓길' 안내 표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동네 이름과 신고 위치 번호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어 왠지 마음이 놓였다. 불빛이 아닌 글씨 하나, 선 하나가 이상하게도 길을 비추는 것만 같았다. 몇 걸음 더 내디디니 또 다른 표시가 발끝 아래에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 '괜찮아, 지금 이 길을 함께 걷고 있어'라고 속삭여 주는 듯했다.



서울시와 구청, 경찰이 함께 운영하는 안심 귀갓길은 어둠을 밝히고 마음의 어둠을 덜어낸다.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는 노면 표시와 센서형 LED의 은은한 빛이 지켜주고 있다는 마음의 위안이기도 하다. 서울에만 362개의 귀갓길이 운영된다고 한다. 숫자 너머로, 그 불빛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밤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흔히 안전을 사회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전은 사회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약자를 향한 관심과 위험을 감지하는 낯선 이의 걸음을 헤아리는 안전장치일 것이다. 차가운 골목길 바닥에 새겨진 표시 하나가, 누군가의 귀가를 지켜주기 위한 배려라는 것이 따뜻한 철학이 된다.



얼마 전에 지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늦은 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길,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발걸음 소리에 잔뜩 몸이 굳어버렸다고 했다. 그녀가 걸음을 빨리 뛰면 그 남자도 빨리 따라오고 그 짧은 순간 공포에 휩싸였다고. 알고 보니 같은 아파트 방향으로 향하던 또 다른 귀가자였을 뿐이었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는 작은 그림자도 크게 느껴지고, 낯선 숨소리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서 밤길에는 진짜 빛과 심리의 빛이 모두 필요하다.



CCTV가 늘고, 안전장치가 적극 도입되면서 범죄가 줄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뉴스 보도에서 보았다. 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사회가 약자의 걸음을 듣고자 하는 마음과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불빛은 전기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다.



안심 귀갓길은 단순히 길 위에 존재하는 시스템이기보다는, 공동체와 함께 하겠다는 의미이다. 혼자 걷지만 혼자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일 테고 약한 이의 떨림을 귀 기울여 듣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다. 그 길 위에서 문득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만드는 힘은 관심에서 시작됨이 아닐까 한다. 거대하지 않아도 작은 불빛 하나에서 작은 배려가 서로의 밤을 지키는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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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질수록 골목은 차갑지만, 마음의 빛은 더 환히 켜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누구든 어둠을 걷는 일이 두렵지 않은 도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둠을 밀어내는 것은 서로를 향한 선한 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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