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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선의도 무거운 질문이다

함께 사는 세상

by 현월안




얼마 전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길고양이 쉼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캣맘들이 정성껏 만들어 놓은 작은 나무 상자, 오래된 동화책 속 오두막처럼 다정한 그곳은 늘 고양이들이 머물던 자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고양이 대신 서성거리는 비둘기들. 한 마리가 쉼터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사료를 하나씩 물고 나오고, 나머지 비둘기들은 사방을 경계했다. 이어서 다른 비둘기가 슬쩍 들어간다. 마치 도둑들이 교대로 빈집털이를 하는 듯, 귀엽고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고양이도 영역을 지키는 동물이지만, 비둘기 역시 자기 구역을 가진 채 무리 지어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도시라는 거대한 숲 속에서 고양이도, 비둘기도, 그리고 인간도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따뜻함을 찾아 지하주차장을 헤맬 때, 비둘기는 그 빈터를 놓치지 않고 날아들었다. 자연의 법칙 앞에서 누가 원래 주인인가는 어쩌면 인간이 만든 규칙일 뿐이다.



처음 쉼터가 만들어졌을 때는 따뜻한 마음들이 모였다. 추운 계절 길 위를 견디는 작은 생명들에게 건네는 호의였고, 그 모습은 마치 잊고 지낸 온기 한 조각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풍경이 달라졌다. 고양이는 개체수가 많아지고, 비둘기도 늘고, 그 주변은 조금씩 지저분해졌다. 사람들은 왜 동네 고양이 집합소를 만드느냐는 불만이 생기고, 좋은 일 하자는 건데 왜 뭐라 하느냐는 소리가 맞섰다. 처음에는 선의였던 일이 어느 순간 논쟁이 되고, 또 작은 갈등이 되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여러 목소리가 생긴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어떤 이는 사랑을, 또 다른 이는 불편을 본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약한 존재를 돌보는 행위가 아름다운 일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관리되지 않는 공간이 불안과 불편을 낳는다. 동물 때문에 생긴 갈등이지만 사실은 어떻게 함께 상생할 것인가의 문제들이다.



살다 보면 선의도 때로는 무거운 질문이 된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걱정이 되고, 따뜻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른척해야 할까. 아니면 같은 마음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마도 정답을 낼 순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다투는 대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문제일지 모른다.



고양이가 머물던 자리를 비둘기가 차지한 듯 보이지만, 어쩌면 그 자리는 애초에 누구의 것도 아닌, 그저 작은 생명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쉼터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던 모두 역시 마찬가지다. 아파트 단지라는 또 다른 둥지 속에서, 잠시 머물다 다음 계절로 옮겨가는 존재들이다. 삶은 잠시의 머뭇거림이고, 서로의 영역에 스며드는 우연과 충돌 속에서 배워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날, 고양이와 비둘기, 그리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함께 산다는 건, 조금씩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이 쌓이는 일이다. 그것을 자연이 가르쳐 준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자리를 찾고, 먹이를 구하고 또 작은 온기를 원한다. 다만 모두는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 때로는 자신의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생명과 다른 생각이 함께 있는 풍경을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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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길고양이 집이 해체되었다. 모두 떠난 쉼터 앞에서 비둘기가 한 알의 사료를 물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그 마당은 모두의 것이고, 세상은 그렇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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