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커피 맛은 조금 더 깊었다
지인과 점심을 마치고, 늘 그렇듯 익숙한 커피 전문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2층으로 된 예쁜 커피점이다. 1층엔 사람들이 많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영업이 어렵다지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커피점에도 햇살이 드는 듯했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직원이 작은 종이컵을 건넸다. "신메뉴 도라지차입니다" 그 말과 함께 입안에 스미는 향긋한 도라지 향이 나쁘지 않았다.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도라지차가 한순간 교차하며 머릿속이 맑아진다. 신기하다. 조금만 다른 온도, 조금만 다른 맛이 사람의 마음을 살짝 흔들어 놓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이렇게 손님이 많은데 굳이 신메뉴까지 준비한 이유가 무엇일까. 더 많은 수익을 위한 전략일까, 아니면 치열하게 버텨내기 위한 몸부림일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지인도 같은 생각을 꺼내 놓는다. 1층과 2층 넓은 공간을 운영하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점심시간에만 붐비고 낮에는 한산하게 보이는 날이 많았다. 넉넉한 공간에서 주는 현실이 또렷이 떠오른다. 높은 임대료와 오르는 재료비, 절대 가볍지 않은 인건비가 있을 것이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새벽부터 움직였을까.
그 작은 종이컵 하나에 담긴 도라지차가 서비스지만 그 온기가 깊이 다가왔다. 커피점의 도라지차 맛은 생존을 위한 창의이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마지막 힘일지도 모른다. 작지만 살기 위한 변화는 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이미 마음을 내주었다.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저 손님과 주인의 관계이고, 서로의 시간을 지켜주는 작은 인연으로 말이다.
그곳 커피점은 참 예쁜 공간이다. 통유리창 너머로 햇빛이 쏟아지고 바람이 스친다. 책을 읽고, 또 글을 쓰고, 마음을 가다듬는 나의 장소다 그 작고 사소한 순간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곳 커피점이 오래도록 빛나면 좋겠다. 그곳 매장 사람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향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삶은 모든 것의 상생으로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내가 발 딛는 장소와의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살게 한다. 누군가의 수고가 내 평온을 지탱하고, 나의 발길이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낸다. 세상은 언제나 주어진 무대 위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무대가 꺼진다면 서로 모두 빛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동참하고 싶다. 그 작고 따뜻한 곳의 내일을 위해, 나도 조용히 응원의 숨을 불어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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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커피 맛은 조금 더 깊었다. 그리고 도라지차는 한 모금의 약속 같았다. 다시 올게요. 작은 변화들을 응원하며, 이곳의 계절이 오래도록 춥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곳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들이 소중하게 또 다른 의미가 되고, 누군가의 커피 한 잔이, 또 누군가의 삶을 버티게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