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말 하러 모인 이 시간이 즐겁지 않은가
십수 년을 함께 글을 쓰며 알아온 크루가 있다. 마음을 늘 가까이 두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지인이라고 부르기엔 단어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정이 있다.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깊고 단단하다. 문장 사이사이 스며든 웃음과 위로, 그 결을 닮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 그 문우들과 동해안으로 2박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맞춰보는 일정이었지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누구도 어긋나지 않았고,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서로의 속도를 아는 사람들끼리의 여행은 늘 그렇듯 부드럽고 느긋하다. 넓은 동해 바다에 가서 발도 담그고 많은 걸 느끼고 마음에 담아두었다. 숙소 가까운 산을 오르고 계곡을 따라 나란히 걸으며 함께 생각을 나누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마신 차 한 잔은 마음의 여유를 깊게 이끌어 주었다. 숙소 가까이 둘레길에서 도토리묵에 막걸리를 나누던 순간은 그저 평범하지만 반짝이는 시간이었고 대단한 경치보다, 그저 서로의 존재가 만든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
다섯 명이 모이면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다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 말을 참 예쁘게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이 많아도 싫지 않다. 각자의 말은 조심스럽게 배려를 두르고, 웃음으로 포장되어 건네진다. 누군가 사족을 길게 붙여도, 다른 이가 곱게 또 자연스레 마무리를 곁들여준다. 가끔 말이 많아도 넘치지 않는 사람들, 잡아줄 줄 알고 적당히 놓을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그날 저녁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다.
"쓸데없는 말 하러 모인 이 시간이 즐겁지 않은가요~"
모두가 웃었지만, 그 말이 어쩐지 진심처럼 들렸다. 인생의 어느 시간쯤 되면, 쓸데없는 말이야말로 서로를 살게 한다는 걸 안다. 삶은 의미 없는 듯 보이는 대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알게 모르게 이어지는 선 순환의 연결이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 삶의 무게를 안고 산다.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그 무게를 가벼이 정리하고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렇게 다져온 세월이 쌓여, 지금의 문우들을 만들었다. 어느새 문장은 서로를 닮았고, 우리는 문장을 닮았다. 당뇨 판정을 받은 한 문우가 웃으며 말한다.
"나이가 좀 더 들어도 함께 이렇게 건강히 여행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한바탕 웃었지만, 그 말은 모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함께한 시간의 무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훨씬 단단하니까 말이다.
삶은 계속 함께하는 일이다. 가끔 멀어져도 때로는 침묵으로 건너가도, 다시 만나게 된다. 진짜 관계는 오랜 시간의 침묵을 견디는 힘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 문우들은 굳이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의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저녁빛이 바다 위에 길게 흘렀다. 누군가는 잠들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메모장을 열었다. 나는 그 순간, 함께 있음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새삼 알았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관계는 얇아지고 대화는 짧아진다. 하지만 오래된 문우들의 시간만은 느리게, 그리고 깊게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삶의 의미는 멀리 있지 않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함께 나이 들어갈 사람과 서로의 지난 시간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된다. 그 몇 사람만 곁에 있다면 인생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언젠가 또 여행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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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그 끝에서 다시 만나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다. 세월의 문장 속에서 서로를 읽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삶은 한 줄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