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의 그 진한 온도
오래된 모임 중 한 사람이 최근에 이혼을 했다. 중년을 지나는 시점에서 많이도 고민한 듯 보였다. 한동안 모임에 안 나오고 수척해진 모습에서 모든 걸 말해주는 듯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혼 법정 언저리에서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혼법정에서도 웃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헤어지는 날까지 쿨하게 잘 지내자고 하는 모습이 참 이해가 안 되더라는 그녀의 말끝이 오래 남았다.
함께한 세월이 무게를 가질수록, 이별은 단단한 침묵으로 남는 법인데 요즘은 그조차 사라진 듯하다. 법정 문을 나서며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고, SNS에 '좋은 추억이었어'라고 남기는 사람들. 이혼이 아니면 답이 없을 만큼 무겁고 깊이 고민하며 끝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헤어짐을 가벼이 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니 세상은 다양한 색깔로 존재한다.
요즘 방송가엔 이혼을 주제로 한 예능이 쏟아지고 있다. 한때 '우리 이혼했어요'가 화제를 모으고, 뒤이어 '결혼과 이혼 사이', 그리고 또 '이혼숙려캠프'가 등장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머물며 이혼을 다시 고민하는 부부들, 제작진은 이혼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는 프로그램이라 말하지만, 어쩐지 화면 속엔 슬픔보다 연출된 감정의 소비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혼조차 이제는 콘텐츠가 돼버린 시대다. 상처조차도 조명 아래 놓이면 흥미가 되고, 결별조차도 조회수로 평가받는 세상이 되었다.
이혼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말은 아니다. 누구나 관계 속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고, 또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자유가 있다. 이혼만큼 무겁고 어려운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이혼이 방송을 보다가 보면 너무 쉽게 또 너무 빠르게 소비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은 인생의 중요한 서약이지만, 이제는 경험의 한 대목처럼 지나간다. 그걸 또 방송에서 이혼 예능을 한다. 사랑이 깊을수록 끝은 조용하고 아픈 법인데 말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올해 결혼 건수가 전년 대비 22%나 증가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한동안 줄던 결혼이 다시 늘었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수치 속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다. 결혼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또 헤어짐의 수도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온도가 있다.
그 온도는 말보다, 표정보다도 더 오래 함께한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온도가 식어버리면, 아무리 예쁜 말로 덮어도 관계는 차갑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다. 사랑도 빠르고, 헤어짐도 빠르다. 모든 것이 즉시 결정되고, 또 바로 삭제된다. 세상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
가끔 공원을 산책하다가 보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있는 노부부를 보게 된다. 서로의 얼굴에는 세월이 새겨져 있고 또 그 주름 사이로 흘러나오는 따뜻함이 있다. 그들은 아마 수없이 다투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견디며 함께 살아낸 세월이 그들의 손을 붙잡고 있다. 서로의 온도야말로 사랑의 진짜 무게다.
사랑은 머무는 힘이다. 좋을 때만 함께하는 것보다 좋지 않은 순간에도 머물러 주는 것이다. 그 머무름 속에서 성장하고 배운다. 모두가 살다 보면 이혼보다 더한 순간이 왜 없으랴.
어쩌면 필요한 건 마음의 깊이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서로를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으려는 의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변화를 함께 견디는 일이다. 그 힘겨운 과정을 이혼 예능이 대신 다 보여줄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잇기 어렵다. 그 끈이 단단히 묶이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관계의 속도가 빠른 시대일수록, 오히려 더 느리게,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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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선택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 너머의 공허함을 모두가 안다. 사랑이란 본래 쉽게 시작할 수도, 쉽게 끝낼 수도 없는 일이다. 생의 무게를 견디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은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