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여 년 만에 다시 마주 한 그녀
수십여 년 만에 다시 마주한 그녀는, 기억 속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빛을 품고 있었다. 예전에는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던 사람이고 특별히 눈을 사로잡는 것도 없던 사람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의 사이로 은은하게 번지는 고급진 귀티가 보인다. 세월이 그녀를 데리고 가는 동안, 어딘가에서 부드럽고 은은한 고급스러움을 덧칠을 해 놓은 듯했다.
그녀의 미소는 편안하고 생각의 시선이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편안한 온기가 표정에 자리하고 있었다. 좋은 직업을 가져서 그럴까. 남편을 잘 만난 걸까.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귀하게 보였다.
문득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사람의 얼굴은 그가 30대를 어떻게 살아왔는지로 결정된다" 그 문장이 낡은 책갈피처럼 기억 속 어딘가에서 생각이 났다. 그녀는 오랜 시간 회사생활에서 잘 다져온 시간들. 누구나 그렇듯 길게 한 곳에서 쌓아 둔 이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펄펄 살아 움직이고 생동감 있는 날것의 세상, 광고계를 이끌던 사람이다. 긴 터널 속에서도 스스로를 놓지 않았던 시간들, 부끄럽지 않게 살아낸 선택들이 그녀의 표정을 이토록 단단하고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흔히 ‘생긴 대로 논다’는 속담을 떠올리지만, 어쩌면 그 반대가 더 진실에 가깝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며 ‘노는 대로 생겨진다.’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언어를 쓰며 하루를 견뎠는지, 어떤 마음으로 관계를 이어왔는지가 그의 인상에 서서히 스며든다. 주름이 만들어지는 방향에도 삶의 결이 묻어난다. 그녀의 주름은 참 곱다. 그건 단순히 피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 살아온 연결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광고 문안을 쓰며 하루하루를 단단히 채워갔던 그녀는 대기업을 거쳐 이제는 회사를 만들어서 카피라이터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젠 사람을 관리하고, 말의 힘을 믿고, 문장의 온도를 다루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단단하게 느껴졌다. 삶을 하나의 문장처럼 잘 손질해 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말 끝에는 은근하게 품격을 흘렀다. 말의 속도와 단어의 선택, 나를 바라보는 눈빛의 깊이가 달랐다. 사람의 말에는 향기가 있다. 누구나 오래 살면 주름은 생기듯이, 시간을 어떻게 쌓아오고 또 무엇을 품고 긴 시간을 견뎌왔는가는 그 사람 말속에 다 들어있다.
젊을 때는 여러 명이 모여 있어도 특별한 차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방향으로 나뉜다. 누군가는 낮은 곳으로, 누군가는 더 따뜻한 곳으로. 각자가 지닌 삶의 온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한 음영을 남긴다. 그녀의 온도는 따뜻했다. 따뜻함 속에 격이 있고, 품격 속에 긴 삶이 들어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스치는 늦가을 바람이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쉽게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인상은 여러 가지가 놀라움이었고 그것은 한 사람이 잘 살아온 삶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긴 시간 그녀의 체취는 많은 물음을 남기고 많은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날 저녁 나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나의 표정에는 어떤 문장이 새겨지고 있을까. 내 말투에는 어떤 향기가 머물고 있을까. 내가 만든 주름에는 어떤 날들이 담겨 있을까. 사람은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한 지인의 품격 앞에서,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ㅅ
삶은 누가 대신 그려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그려가는 것이다. 그 그림은 언젠가 얼굴이 되고, 말이 되어, 온도와 향기가 되어 설명해 준다. 그렇게, 세월은 누구에게나 흐르고 격은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조용히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