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나간다

가을은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액자 속 그림이다

by 현월안




가을이 떠나간다.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는다. 마치 품고 있던 온기와 색을 세상에 조금 더 나누어 주고 떠나려는 마지막 인사처럼, 11월의 가을은 모두의 곁에서 천천히 이별의 준비를 하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모든 이의 주변을 지켜 주던 단풍잎들은 어느새 한 해의 생을 마무리하며 땅으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앙상해진 가지 아래 쌓여 있는 붉은 잎은 마지막 순간까지 늦가을의 정취를 가슴 깊이 뿜어내며 마지막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 준다.



그 속까지 강렬하게 붉게 물들이고는 또 조금씩 멀어져 간다. 울긋불긋하던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한다. 조금 늦은 잎들만 가지에 남아 아직 뜨겁게 자신을 발하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은 무엇 하나 서두르지 않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세상 어느 것도 무상하지 않은 것은 없다. 가을이 떠날 채비를 하면 생이 덧없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자연의 이치는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이는 순환 속에 있다. 떠나는 것이 서럽더라도, 돌아오는 것도 자연이고 머무르는 것도 자연이다. 가을의 뒷모습에 괜스레 마음을 빼앗기는 건 그만큼 아름다움이 내 안에 머물렀다는 증거일 것이다.



푸르름이 갈색으로 변하더니 어느 순간 길바닥에 누워 바스락거리던 잎들. 그 잎들을 밟을 때마다 계절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발끝으로 느끼곤 한다. 스산한 바람을 몰고 오던 가을은 어느새 세찬 갈바람에 밀려나고 마음 한편에 아쉬움만 남겨 둔다.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사람들의 외투가 두툼해지고, 그토록 설레게 했던 가을은 어느새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속에 고요히 남는다.



가을은 참 신비로운 계절이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액자 속 그림 같고, 어느 길을 걸어도 주인공이 되어 주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선물처럼 바꾸어 놓는다. 가을이 오면 이유도 없이 생각이 깊어지고, 사색하는 것만으로도 시인이 되고, 평소의 시간을 잠시 벗어나 새로운 감각의 세상으로 초대받은 듯한 여유를 경험한다. 가을은 아름다운 넘어 고급스러운 기억을 남긴다.



생각해 보면, 일 년 열두 달 중 단 하루도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있었던가. 그만큼 매 계절을 살아내고 삶의 작은 축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을은 나에게 세밀한 감정과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이 떠난 자리에는 가슴이 시리다. 아름다움이 지나간 흔적은 때때로 아름다움 그 자체보다 더 잔잔하게 남는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 되면 수 없이 가을 예찬을 한다. 글로, 때로는 그림으로 차곡차곡 담아둔다. 하지만 가을의 색감과 운치, 그 정서는 아무리 글로 표현하려 해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무한하다.



그래서 매년 같은 자리에서, 살피는 마음으로 가을을 마중하고 배웅한다. 때로는 아쉬움 속에서, 때로는 감사 속에서 배웅을 한다. 수많은 감성과 설렘을 안겨주고는 이제 가을이 떠나간다. 가을이 남겨 둔 따스한 온기, 그리고 가을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은 나의 삶의 한 귀퉁이에 은은한 빛으로 남아 있다.



계절은 순환하여 다시 감정의 문을 두드리겠지만, 이번 가을이 준 감정은 오직 이번 가을만의 것이다.

그렇기에 떠나는 계절을 가만히 바라보며 보내는 일, 그것도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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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스쳐 가는 일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일과 닮아 있다. 머물 때는 뜨겁고, 떠날 때는 조용히 감사하며. 가을은 삶의 철학을 가르쳐 준다. 머무는 순간을 사랑하고, 떠나는 순간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그리고 또 다음 계절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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