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를 걸으며
초가을부터 간간히 만보를 걷기를 한다. 수없이 들어왔던 이야기 중에,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요즘 새삼 느낀다. 그런데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가까운 거리는 자동차를 타고, 짦은 길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그 편리에 아주 오랜 시간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의 변화와 마주하게 되었다. 몸무게의 변화와 그리고 어딘가 모를 나태함까지 이제는 걷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게 됐다.
이제 한두 정거장은 일부러 걸어간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걷는 것은 이제 마음먹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다. 같은 길이라도 조금 돌아가고 다른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며 걷는 일이 늘어났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아도 되고, 소음도 덜하다. 아파트에 예쁘게 조성해 놓은 녹지 사이사이 단풍나무가 늘어서 있는 곳에서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에 흔들리는 붉고 노란 잎에 마음을 두기고하고, 걷다 보면 계절에만 느끼는 감각이 나를 깨운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과 마주친다. 며칠 전, 무 다발을 들고 힘겹게 들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무거운 짐을 조금 거들었더니, 해맑은 미소로 할머니의 진심을 내게 건네신다. 걷는다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고 걷다 보면 또 우연히 삶의 온기를 만난다.
다른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일에는 잠시 마음 한편이 켕기기도 한다. 경비원을 만나면 공손히 인사를 하고, 내 몸이 잠시 남의 공간을 거치는 것에 대한 예의를 다한다. 걸으면서 내 몸이 어떻게 세상의 리듬과 맞닿는지, 다른 사람의 삶과 얼마나 부드럽게 스며드는지를 느낀다.
걷다 보면 건강해지고 마음까지 깊이 생각이 연결되는 걸 알게 된다. 하루 만보를 걷다 보면 신기하게 작은 소리들이 들어온다. 발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움직임이 내 몸 전체를 깨우고,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오래 앉아 있던 시간의 무게가 풀리고, 생각과 감정이 부드러워진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제법 걷게 된다. 환승 구간에서의 걷는 길이는 작은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운동이라는 자각을 하고 걷다 보면 나름 즐거움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움직여야 하고, 더 운동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건강 수칙이기보다 삶을 지탱하는 의무다. 내 몸은 스스로의 노력을 기억하고, 쌓인 시간을 그대로 되돌려준다. 게으름과 무력감으로 채워진 날들은 몸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늦가을의 단풍 아래서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걸음을 내딛는 시간은 부드럽게 흘러간다. 걸음 하나하나가 나의 흔적이고, 발걸음 속에서 세상과 사이의 균형을 찾는다. 찬기운이 찾아와 추위가 깊어도, 꽤 괜찮은 차가움이다. 추위 속에서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이 서로 맞닿는 순간이 괜찮다.
하루 만보를 채우며 느끼는 작은 성취와 기쁨은 몸과 마음을 고르게 하고, 삶에 대한 감사와 자각을 준다. 내 몸의 한계를 알고 존중하며,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는 일. 그것이 걷기를 통해 배우는 철학이다.
오늘도 걷는다. 바람을 느끼며, 햇살을 맞으며 계절의 냄새를 맡으며, 내 몸과 마음의 리듬을 느끼며 걷는다. 걷는 동안 마음은 차분해지고, 생각은 맑아지며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만보 걷기는 이제 삶의 철학이 되었고, 나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마주하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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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쌓이는 시간과 기억, 가끔 마주하는 작은 친절과 정을 느끼고, 계절의 변화와 몸의 감각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삶은 움직임 속에서 단단해지고, 그리고 내 몸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