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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견디는 철학

희망을 키우는 일은 겨울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

by 현월안



겨울을 나무의 바라본다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계절에도
나목은 스스로를 더 낮추고,

더 비우고 묵묵히 서 있다
한때는 꽃을 피워 바람을 유혹했고,
여름 한낮에는 잎의 그늘을 펼쳐
세상의 뜨거움을 품어냈다
가을에는 마지막 남은 빛을 불태우며
그 화려함을 완성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벗어버린 이 순간,
나무는 더 단단한 이름을 얻는다
단호하고 흔들리지 않음,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더 깊은 충만함,


햇살은 내려앉을 틈을 잃고 머뭇거리고,
겨울새마저 가벼운 마음으로 지나쳐가지만,
나목의 고독은 스스로를 채우는 침묵이다
부러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이미 모두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빈틈을 계절의 칼바람에 맡긴 까닭은
그 속에서 새로 돋아날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흰 눈조차 이내 흘러내리는 가지 위에서
나무는 겨우내 영혼을 살찌운다


고목과 나목의 차이는
고목은 다 닳아 절망을 붙든 나무고,
나목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품은 나무다
절망과 희망은 같은 겨울을 견디는 이름일 뿐,
삶이 가르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유한 것보다 놔 버린 것이 더 큰 힘이 되고,
화려했던 순간보다 비어 있는 시간이
더 멀리,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겨울이 길어 보이는 날이면
나목이 서 있는 자리를 떠올린다
붙잡아둘 수 없는 것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인간은 다시 뿌리를 깊게 내린다
가장 고요한 계절 속에서
보이지 않는 다음 장을 또 써 내려간다
사유는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그 미완의 길 위에서
삶은 다시 새싹을 틔우려는 반복을 한다


봄을 부르는 일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며
희망을 키우는 일은
추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배우는 가장 좋은 스승은
지금 겨울을 묵묵히 견디는
한 그루의 나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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