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

행복한 산책은 마음을 살찌운다

by 현월안




어떤 작가는 "팔을 다쳐도 글은 쓸 수 있지만, 다리를 다치면 글을 쓸 수 없다"라고 했다. 그 말은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사유를 던져주는지, 몸의 리듬이 어떻게 마음의 문장을 깨우는지, 그 비밀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의 고백이다. 인간의 뇌는 가만히 앉아 있을 때보다 적당히 움직일 때 더 활기차게 반응한다. 그 적당한 움직임에 가장 잘 맞는 활동이 바로 걷기이고, 걷기의 사유는 생각의 문을 조용히 열어준다.



적당한 루틴에 따라 동네 주변을 걷는다. 걷다 보면 안개처럼 흩어지는 잡념이 줄어들었다가, 다시 어디선가 불쑥 새로운 생각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 산책길 어딘가에서 실마리를 드러내고, 마음속에 쌓이던 작은 의미가 바람결에 조금씩 풀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가 놓치고 지나쳤던 삶의 작은 결들이 비로소 촉감처럼 느껴진다. 오래 구석에서 혼자 피어난 들꽃과, 바람 방향의 미세한 변화들, 계절이 아주 천천히 나의 옷깃을 바꾸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나의 글감이 된다.



주위의 표정도 걸을 때 더 잘 보인다. 누군가는 잠깐의 한숨을 표정에 가지고 있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웃음을 걸어두고 지나간다. 골목마다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그 모양마다 다른 이야기가 배어 있다. 걷기는 세상을 조용히 다가가는 일이다. 서두르지 않고, 머무는 자리만큼만 내 마음에 들어온다.



걷다 보면 어느새 고요하게 나에게 향한다.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움직임을 따라 깨어나고, 생각들은 단순해지거나 뜻밖의 방향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어떤 질문은 답을 얻고, 어떤 답은 다시 새로운 질문이 된다. 그것이 걷기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걷기는 몸의 흐름을 단번에 돌려놓는다. 막혀 있던 기운이 흘러가기 시작하고, 산책이 끝나면 건강한 생기가 따뜻하게 흐른다. 나 혼자 걷는 산책이 사실은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괜찮은 시간임을, 걸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알게 된다.



내 걷기 루틴은 세 갈래다. 공원의 고요한 원을 따라 도는 길, 동네의 오래된 골목을 잇는 미로를 찾는 길, 그리고 조금 멀리 이웃 동네의 경계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길. 세갈레 길은 나의 내면 지도와도 같다. 공원 코스는 나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골목길은 나의 오래된 기억을 불러오고, 이웃 동네 경계의 길은 내 안의 새로운 호기심을 깨운다. 어디로 걷든 그 끝에는 언제나 깊은 사유가 있다.



산책은 나에게 작은 사랑과 애정이다.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그러나 세상을 더 깊게 사랑하기 위해 갖는 고독의 시간이다. 인간에게만 있는 외로움은 그저 결핍이 아닌, 사유하고 사랑하고 살아 있다는 증거다. 혼자 걷는 시간은 그 외로움을 아름답게 돌보는 일이다.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나만의 리듬으로, 나만의 사유를 품으며, 나만의 길을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고 그 시간을 넉넉하게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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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산책은 마음이 즐겁다. 삶의 곳곳에 남은 빈틈을 따뜻하게 채운다. 걸음을 옮기며 모으는 세상의 결과, 바람의 결, 마음의 결들이 어느새 나를 넉넉하게 만든다. 걷기의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 수수하고 고요한 리듬이 나를 깊은 곳까지 데려다 놓는다. 어쩌면 글 쓰는 일은 걷는 발끝에서 시작되고, 삶은 걸으며 혼자의 시간에서 좀 더 진실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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