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 속에서 자란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by 현월안



올해의 끝자락에서
깊은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말들이
서서히 빛을 찾는다
사랑보다 찬란한 보석이 없다는 것,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흔들렸고
때로는 미워한 날이 많았다
그렇게 소리 없이 흘러간 시간들이
하나둘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가슴 깊숙이 새겨둔 진실은 단순했다
사랑은 상처를 막으려는 울타리보다

더 넓게 뻗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높은 벽을 쌓아 올렸고
그 그늘 속에서 길을 잃은 날도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내 안의 허기와 고집,
그 그림자를 마주하다 보니
또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 간다


나눔보다 향기로운 것이 없고
비움보다 자유로운 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욕심의 손을 놓지 못했다
고집스러운 아집에 매달리느라
내 안의 청초한 멋을 잃어버린 순간들,
그때마다 불어오던 반목의 바람 속에서
깊은 계절을 건너야 했다


그러다 문득,
끝내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이
얼마나 좁고 서늘한 방이었는지 깨닫는다
얼마나 벽을 높였는지도
올해 마지막 문턱에서
조심스레 마음의 등을 쓸어본다
돌아오느라 오래 걸린 마음에게
아주 천천히 따뜻함을 되돌려 준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자란다
결핍이 서로의 결핍을 비추고
서툰 이해와 불완전한 용서 속에서
관계는 다시 피어난다
다시 살게 하는 것은,

순간에 손을 내미는 용기이고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조용히 비워내는 마음이다
그 작은 씨앗 하나가
어둔 겨울 속에서도 끈질기게 숨을 쉬며
다시 봄을 향해 나아간다


12월, 차가운 공기 너머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한 하늘이다
그 흰 눈발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처럼
부드럽게 내려와 굳은 마음 위에 쌓이고
굽은 생각들 위로 포근한 침묵을 드리운다


해마다 저물어 가는 것들은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데려다 놓으려는
세상의 조용한 가르침이다
올해 나를 견디게 해 준 사람들,
맑은 온기를 건네준 모든 관계에게
고요한 감사의 마음을 내어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해가 지는 자리에서
다시 깨닫는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사랑이 머물다 간 자리에 남은 온기가
내일을, 그리고 새해의 길을
아주 따스하게 데우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