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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월안 Dec 04. 2023

쓸쓸히, 하늘에 별이 되신 은사님

췌장암으로 너무 일찍 떠나신 선생님을 추모하며...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소식을 듣고 '아니 이럴 수가 ~  건강하셨는데...'  

무슨 일이란 말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췌장암이 말기에 발견되어 그로부터 6개월 정도를 사셨다는 것이었다 살펴드리지 못한 죄송하고 황망한 마음이, 선생님과의 지난 일들이 필름처럼 스쳤 한동안 선생님과 애틋하고 살갑게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이 앞섰다


    선생님은 사대를 졸업하시고  부임하는 학교가 내가 다니는 여자고등학교였다 그렇게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시작되었작은 키에 동그란 눈이 반짝반짝 예쁘게 빛나던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얘들아~ 난 너희를 꿈을 주려고 이 학교에 왔어~ '라는 첫마디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마음을 활짝 열었다 다른 선생님들구별되게 단번에 젊은 패기의 자신감으로 우리 반 전체를 선생님 품 안으로 확 끌어들였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오셨기에 우리와 나이차이도얼마 되지 않아서 더 친근감이 있었다 대학에서의 생활과 낭만과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고 공부하는 반으로 이끄셨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을 첫 담임을 맡으셨으니까  정이라서 애틋해하셨고, 우리는 그만 대학생 같았던 여자선생님에게 홀딱 반했우리 반에 내가 반장을 맡고 있어서 그 넘치는 열정 때문간에서 나는 엄청나게 시달렸다 


    선생님은 넘치는 패기와 욕심으로 무엇이든 반대항 교내대회든, 학교를 대표하는 교외대회든, 일등을 하도록 밀어붙이고 그렇게 될 때까지 공부시키고 훈련시켰다 

모든 대회에서 우리 반이 상을 다 휩쓰는 반이 되었고 그야말로 공부하는 반으로 만들었다 선생님의 강한 열정으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선생님은 학교 근처에 숙소를 얻어두고 수시로 우리 반 아이들 집으로 불러서 함께 공부수학교과 담당을 하셨으니까 수준별로 기초를 다져주셨다 풀릴 때까지 문제를 만들고 또 만들어 주셨다 뭔가를 하려면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행운이 따르듯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처럼 선생님의 하숙집에는 마당 한가운데 넓은 평상이 펼쳐져있었다 그곳에서 모여서 공부를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하숙집오래 했지만 

'이렇게 열정적인 선생님은 처음여~  좋은 선생님 만났구먼~'하시며 평상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또 하나를 펼쳐주고는 얼마든지 공부하라는 응원까지 해주셨다 여러 사람이 살던 그 집은 시끄러웠을 텐데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응원주셨 

학원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던 때에 여름방학 내내 선생님 하숙집에서 공부를 했다 솜씨 좋은 우리 엄마는 반찬을 만들어 오셨엄마김치는 단연 인기였 선생님이  전기밥솥에 밥을 해 주시면 우린 열심히 공부에 열을 올렸다

단연 학급전체가 성적이 좋아서 다른 반보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 모두 우리 반에서 차지는 했다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선생님과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 콧물로 작별을 했다 감성이 막 자라나는 시기의 친구들이었기에 정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 보며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만나자는 말을 뒤로하고 우린 그렇게 고3이  되었다 선생님은 1학년 학급을 맡으셨고 그곳에서도 훨훨 날고 계심을 성과로 나타내셨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 되는 것'처럼 1학년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 우린 정말 이상한 나라의 마법을 경험을 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리더가 그 집단을 확 바꿀 수 있는 것은, 책임과 그 시간을 함께 노동했던 결과임을 행동으로 보여준 이다


    그 후로 선생님의 기억은 가끔 떠올릴 뿐 그렇게 잊혔다 학교를 졸업하고 두 번 정도 찾아뵌 것 외에는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다

나는 김천이 고향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살았다 남편은 김천이 고향이면서 김천고를 졸업을 했다 김천고 총동창회는 부부동반을 하고 성대하게 온 가족의 축제처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뽀빠이 이상용 씨가 하루종일 사회를 보았고, 이름이 알려진 가수들이 많이 오고 종일 축제를 하던 때였다 지금은 모든 행사를 슬림하게 진행하지만 그때에는 풍성하게 먹고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때가 있었다 김천고 졸업 윗기수 선배 중에서 잘된 선배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 국회의원과 요직에 는 사람이 많았던지, 찬조 물품이 운동장 한편을 가득 채웠었다 행운권 추첨에서 당첨이 안 된 사람이 없었고, 우리 부부는 tv와 자전거를 타 가지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날 프로그램 안에는 여자들이 참가하는 게임이 있었다 나는 50m씩 이어달리기 주자로 참가를 했다 달리기를 잘해서가 아닌 모두가 두 가지 이상은 참가해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며 준비동작을 하는데  

멀리서 점점 다가오는 사람이 좀 낯이 익었다

눈을 크게 뜨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고2 때 담임선생이셨  

'선생님이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지?'

'세상에나...'

선생님도 50m 달리기 주자로 나오셨던 것.

둘이가 단번에 알아보고 눈물의 상봉을 했다

'어머~ 네가 여기 웬일이니~'

 '선생님은 웬일이세요?'

진행하는 사람의 마이크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리고 선생님이 먼저  달리기 주자가 되었다

'일단 달리기를 하고 보자~'

'그래요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고 흥분이 돼서 제대로 달리기를 못했다 구름 위를 달리는 것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선생님 남편도 김천고 출신이셨던 

선생님과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던지 서로의 모습에서 세월이 느껴졌고, 여전히 교육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계셨 

그때당시 선생님의 남편은 대구사람이셨고 대구의 중심가에서 대구은행 지점장을 하고 계셨다 선생님 남편을 본 순간 말끔하고 선하게 생기신 모습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과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은 대구사람을 만나 근무지를 대구경북으로 옮겨서 교편을 잡고 계셨던 것이다


    가끔씩 눈을 감고 내게 특별했던 사람을 떠올릴 때면, 선생님이 생각나곤 했었는데 세상에나 김천고 운동장에서 선생님을 만나다니 정말 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선생님은 마치 내가 잃어버렸다가 찾은 자식처럼 두 팔로 꼭 안아주며 진심에서 우러나는 찐 눈물을 흘리셨

'보고 싶었다고 여러 번 흐느끼셨다'

우린 함께 그간 빈시간을 진하게 메우고, 서로의 삶에 깊숙이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때에 구미에 살고 있었기에, 대구에 살고 계시는 선생님 부부와 자주 만났다 서로 남편들이 김천고 후배였으니 할 이야기가 많고도 많았다 친근하게 서로 소통하머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았던 그 시간이 소중했다 애틋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선생님과 주기적으로 만나는 동안에는 맛있는 음식점도 찾아다니며 정말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이 선물을 정말 많이 주셨다 작은 것 소소한 주방용품까지 챙겨주시던 분들이셨다 너무나 많은 걸 주셨던 정 많은 분들이라서 가족처럼 느껴졌던 것, 살갑고 가까이 지내면 가족보다 더한 사랑이 있음을 선생님부부에게 진하게 느꼈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그 애틋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전화로만, 선생님 안부를 묻고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어느새 바쁘게 산다는 이유로 전화도 뜸하게 되었던 것이다 코로나기간에는 한두 번 통화하고는 무심함의 끝을 보여주듯이 근래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코로나가 막 한참 창궐할 시기에 '난 괜찮아~' 하시던 전화 통화가 마지막이었던 것...

그렇게 무심하게 소식을 놓고 있을 때 선생님은 홀로 췌장암 말기 투병을 하셨던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마지막은 외롭고 쓸쓸하셨다니... 


    남편과 장례식장을 찾았다 해맑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선생님이 보였다 거기에 계시냐고 묻고 싶었다 평소의 삶이 '그렇게 가시려고 힘껏 열정을 쏟아냈냐'라고 묻고 싶었다

몰라보게 야윈 선생님의 남편 모습에서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는 선생님의 남편 모습에서, 애틋한 부정이 애달퍼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부부사이가 참 아름다웠던 분들이라서 보는 내내 더 괴로웠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어찌 떠나셨을까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신 모여드는 사람들과 차분하게 다녀가는 사람들에게서 선생님부부의 인품이 보였다

선생님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게 장례식장의 환한 불빛이 유난히도 밝았다


   선생님 남편과 장례식장 한쪽에 마주 앉았다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선생님 얼굴을 뵀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나를  보고 싶어 하셨다는 이야기와 마지막 초라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하셨다는 말에서 그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이야기듣고 그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삶과 죽음은 함께 있음을... 

어느 날 좋은 모습으로 만나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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