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식 신랑 아버지 덕담

요즘 결혼식 풍경은 시대에 맞고 실속 있게 변한다

by 현월안




요즘 결혼식은 여러모로 예전과 다르다. 한때는 결혼식에 가기 전, 현금을 뽑아 봉투에 넣는 일부터가 작은 의식처럼 느껴졌다. 봉투 겉면에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 식장 입구에 앉아 있는 낯선 분에게 두 손으로 건네던 장면은 이제 기억 속 풍경이 되었다. 요즘은 핸드폰을 열어 계좌번호를 확인하고, 축의금을 송금한 뒤 짧은 이모티콘 하나를 남긴다. 번거로움은 줄었고 마음은 여전히 전해진다. 결혼식의 방식이 바뀌듯, 마음을 전하는 형식도 시대에 맞게 옮겨간 것이다.



지난주 결혼식에 갔다. 난 신랑 쪽 하객인데 빈자리에 앉고 보니 신부 측 하객석이었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열렬한 비혼주의자였다는 신부의 특급 비밀을 옆에 앉은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엿듣게 되어 피식 웃음이 났다. 삶은 늘 그렇게 방향을 바꾸며 세상을 향해 데려간다. 확신처럼 말하던 다짐도, 어느 순간 새로운 사람 앞에서 조용히 바뀐다.



예식은 경쾌하게 진행되었다. 신부의 부모가 성혼선언을 했고, 신랑의 부모는 덕담을 건넸다. 신랑 아버지의 덕담에서 신혼여행에 컵라면을 꼭 챙기라는 현실적인 조언과 신랑 아버지의 마지막말인 서로 의견이 충돌이 있더라도, 마지막 남자의 자존심은 지켜달라는 당부에서 예식장 안에는 웃음이 빵 터졌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꺾지 말아 달라는 말이 종일 맴돌았다. 신랑은 노래를 불렀고, 신부는 편지를 읽었다. 주례는 없었다. 대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엄숙함 대신 솔직함이 있고, 훈화 대신 사랑 고백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요즘 결혼식은 더 이상 정해진 각본을 따라가는 의례가 아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가는 작은 축제가 되어간다.



문득 그 많던 주례사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결혼식의 중심에는 늘 주례와 주례사가 있었다. 은사, 교수, 지역 유지 같은 존경받는 어른이 단상에 서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인륜지대사라며 시작하는, 긴 연설을 했다. 그 말들은 대부분 비슷했고, 끝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지막 박수는 감동의 표현이라기보다, 끝났다는 안도의 신호이기도 했다.



요즘 주례 없는 결혼식이 늘어나는 풍경은 의미가 있다. 축복을 내려주는 권위의 목소리보다 서로의 약속을 먼저 믿고 서로 나누는 다짐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 자리 잡고 있다. 결혼식의 중심이 신랑 신부로 옮겨간 것이다.



결혼은 삶의 진행의 약속이다. 살아가며 수없이 수정될 문장 위에, 결혼식은 첫 문장을 적는 날이다. 그 문장은 화려할 필요도, 거창할 필요도 없다. 서로의 사랑과 믿음을 정확히 중심에 두면 된다. 기쁠 때도 지칠 때도, 그 사랑이 이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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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결혼식 풍경은 시대에 맞고 실속 있게, 가정적으로, 알차게 변해가고 있다. 보여주기 위한 의식은 줄고, 살아내기 위한 다짐이 들어있다. 결혼식은 가족과 친지의 축복 속에서 두 사람이 삶의 동반자가 되는 자리다. 축복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조용히 사라진 주례사 자리에는 이제 따뜻한 침묵과 진심 어린 약속이 들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모두가 오래 기다려온 축복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