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과 새로움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의 끝에서 시간을 건너는 의미

by 현월안




새해가 다가온다. 그런데 해가 변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거리의 풍경도, 사람들의 발걸음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절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하루는 또 하루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해의 끝자락에 서면 많은 생각이 오간다. 바뀌는 것은 달력 한 장, 그리고 그 얇은 종이를 넘기는 나의 마음이다.



며칠 남지 않은 날짜를 손가락으로 세다 보면, 시간은 놀랍도록 무게를 갖는다. 숫자로만 존재하던 날들이 한꺼번에 기억으로 몰려온다. 잘 해낸 일보다 미뤄 둔 일들이 먼저 떠오르고, 용기를 내지 못해 끝내 삼켜 버린 말들이 마음속에 남는다. 어느새 시간이 흘렀고, 그 시간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하지 못했는지가 더 또렷해지는 순간이다.



끝은 정리의 시간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끔히 정리되는 해는 사실 드물다. 대부분의 시간은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가고, 계획은 중간 어딘가에서 방향을 잃는다. 계획은 생각보다 쉽게 무뎌지고, 삶은 언제나 계획보다 한 발 앞서 어딘가로 움직인다. 그럼에도 한 해는 끝나고 새해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시간은 참으로 공평하면서도 냉정하게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그 안에 담기는 밀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한 해를 통과하며 성장하고, 어떤 이는 그저 버텨낸다. 또 어떤 이는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 찬 채 연말을 맞이한다. 그 모든 시간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완벽하게 이룬 한 해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새해가 다가와도 큰 차이는 없다. 숫자가 바뀐다고 삶이 새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로 이어지듯, 올해의 나는 내년의 나로 천천히 옮겨 갈 뿐이다. 그래서 특별한 각오가 없어도 거창한 목표 대신, 일상에 작은 새로움 한두 가지쯤 더해 보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변화들이 모여 시간을 다른 결로 만들어 준다.



새로워진다는 말이 해마다 반복되고 그래도 다시 한번 기대를 걸어 보는 쪽이 더 인간적이다. 그 기대가 번번이 어긋난다 해도, 기대하려는 마음이 다음 날로 데려다준다. 그래서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 좀 더 포근했으면 좋겠다.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다독이는 시간. 그런 마음이 있어야 또 한 해를 건너갈 힘이 생긴다. 인간은 희망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곧 새해가 밝아온다. 또 한 살이 더해지고, 시간은 쉼 없이 흐른다. 여전히 그 끝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시간의 끝이 궁금한 이유는, 그 끝에서야 비로소 지금의 삶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끝을 알 수 없기에, 오늘을 살아야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조금 덜 후회하고, 조금 더 따뜻해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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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끝에서 다시 시작선에 선다. 완전히 새로워지지는 못하더라도, 이전보다 조금은 나아진 마음으로.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다시 한 해를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게 또 시간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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