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봄으로써 비로소 안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by 현월안




몸이 아프면 갑작스럽게 삶의 속도를 멈춘다. 며칠 전, 조금 과하게 먹는 음식이 탈이 났던지 하루를 꼬박 무너뜨렸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는 어지럽고 밤새 잠을 설치며 고생을 했다. 그제야 알았다. 너무 많은 것을 잃기 전까지는,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산다는 사실을 말이다.



건강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숨을 쉬고 걷고 말하고 듣는 일. 어느 하나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기에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탈이 나면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고 불안이 몰려온다. 배탈로 인해서 하루가 진하게 무너진 경험은 나이 들어가면서 쉬 저버릴 일이 아니다.



뭔가를 잃고 나서야 안다. 공기는 늘 거기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지만, 숨 쉬기 힘든 날에야 그것이 선물임을 깨닫는다. 곁에 있는 사람은 늘 거기 있을 것 같아 무심히 대하다가, 남겨진 자리에서야 그 무게를 가늠한다. 소중한 것의 부재를 통해 삶은 또렷해진다.



병으로 일상이 무너질 때, 나의 몸이 얼마나 정교하고 경이로운지 새삼 알게 된다. 한 걸음 내딛는 일 숟가락을 쥐고 또 말을 건네고 웃음을 짓는 일은 당연하지 않은 것이다. 뭔가 내 삶의 중심을 무너뜨릴 때 그 순간, 삶은 나를 향해 열린다. 들리지 않던 내 마음의 소리와, 보이지 않던 삶의 결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몸이 아파서 무너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품고 있다. 모든 상실은 안을 들여다보는 비밀이 들어 있다. 잃어버린 자리에 생긴 공백은 다시 살아갈 힘이 자라난다. 겉으로는 허물어지는 듯해도, 그 안에서는 또 다른 시간이 자라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권력과 명예까지 잃고 18년간 귀양살이를 겪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긴 유배의 시간을 지났다. 그러나 그 시간은 허투루 흘러가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사유로 바꾸고, 고독을 책으로 바꾸었다. 수백 권의 책은 잃어버림을 통과한 시간이고 인간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흔적이다.



뭔가를 잃음은 겸손하게 만든다. 한계를 인정하게 하고, 나의 부족함을 이해하게 된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이해와 잃어본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온도다. 뭔가를 크게 소용돌이친 후 비워진 자리에서 느끼는 성숙이다.



시간이 멈춰 선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본다. 소박한 식사 한 끼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창가로 스미는 바람의 감촉이 이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더 가지지 못해 괴로워하기보다,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의 귀함을 되짚게 된다.


~~~~---==~~--ㅊ


하루 이틀 복통은 작은 고통이었지만, 삶을 향한 큰 질문을 건넸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과, 오늘의 온기는 수많은 우연과 은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언가를 잃는 일은 아프지만, 그 아픔은 다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통증은 삶을 더 깊이 껴안게 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그렇게 뭔가를 잃어봄은 삶이 유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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