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감각에 대하여

세상의 희화는 웃음이 들어 있고 또 금세 흩어진다

by 현월안




밈(meme)은 온라인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콘텐츠와 그 콘텐츠를 모방하는 경향 등을 총칭하는 용어다.

밈은 원래 가볍다. 짧고 빠르며, 웃음을 전염시키는 속도로 번진다. 한 장의 사진과 몇 줄의 문장, 반복 가능한 형식은 온라인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스치듯 지나간다. 밈은 웃음이 들어 있고 또 흩어지기 위해 소비된다. 그래서 종종 그 가벼움을 의심하지 않고 가볍게 넘긴다.



최근엔 가난을 소재로 한 밈이 유행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가난을 소재로 한 밈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난을 호소하는 말투와 절망을 가장한 문장과 그러나 사진의 한 구석에는 고급 브랜드의 로고나 값비싼 풍경이 슬쩍 끼어든다. 오늘도 김밥과 라면뿐이라는 말 옆에 놓인 슈퍼카의 열쇠, 돈이 없어 집에서 논다는 자조 아래 펼쳐진 풀빌라의 수영장 풍경. 이런 아이러니는 웃음을 유도한다.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가난'이다. 가난을 견디기 위해 연탄 반 장을 아끼며 살아가는 줄 알았던 청년이 사실은 가난을 체험하러 온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는 반전은, 가난이 얼마나 쉽게 소비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소설이 발표된 지 반세기가 흘렀지만, 가난을 둘러싼 감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다만 무대가 종이에서 화면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문제는 가난을 다루는 방향이다. 예전에도 가난을 소재로 한 온라인 문화가 있었다. 짠돌이방이라 불리던 공간에서 사람들은 소비를 기록하고, 극단적인 절약법을 공유했다. 그것은 웃음 섞인 자조였고, 동시에 서로를 버티게 하는 연대의 언어였다. 힘든 현실을 농담으로 감싸며 그래도 함께 견딘다고 말하는 방식이었다. 그곳에는 웃음이 있었고 연민의 정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가난 밈은 결이 다르다. 가난을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 가난의 언어를 빌려 놀잇감으로 삼는다. 고통은 과정에서 지워지고 가난은 설정값으로만 남는다. 여기에는 더 이상 연대도 이해도 없다. 오직 반전의 쾌감과 잘 살고 있음을 은근히 내보이려는 자랑만 있다.



가난은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경험이고,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 닳아가는 과정이다. 오늘을 넘기기 위해 내일을 담보로 잡히는 일이며, 자존감이 서서히 깎여 나가는 시간이다. 그래서 가난은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겪어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누구나 말하되 누구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밈 문화가 빠르게 번지는 동안, 모두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 말의 무게를 재는 감각과 웃음이 닿는 지점을 가늠하는 의미. 공격적인 표현이 일상이 되고, 가벼움이 유머로 포장될수록 그 감각은 더 둔해진다. 웃자고 한 말이라는 변명은 너무 쉽게 면죄부가 된다. 그러나 웃음이 누군가의 상처 위에 놓일 때, 그것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다.



삶의 철학은 거창한 사상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타인의 처지를 대하는 잠깐의 멈춤 속에서도 만들어진다. 내가 누리는 풍경을 자랑하고 싶을 때, 그것을 가난의 언어로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부유함은 숨길 필요도, 과시할 필요도 없는 삶의 한 조건일 뿐이다. 반대로 가난은 웃음으로 덮을 수 있는 장식이 아니다. 존엄의 문제이며,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무게다.



요즘 그 웃음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이 말은 누구의 삶을 지우고 있는가. 밈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지만 상처는 남는다. 잠깐의 재미를 위해 누군가의 현실을 희화화하지 않아야 하고 그것이 성숙한 사회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가벼운 콘텐츠일수록 더 깊은 책임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웃음은 다시 사람을 향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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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흉내 내는 시대에, 진짜 필요한 것은 가난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웃음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화면 너머의 삶을 한 번 더 떠올리는 일. 그 작은 철학이 쌓일 때, 모두가 쓰는 언어는 덜 날카로워지고, 사회는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