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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징크스, 어쩌면 능력에 관한 이야기
핸드폰을 못 본 사이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50분 전에 걸려왔었고 이후 별다른 메시지는 없었다.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는데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왜 전화했어" 카톡을 보내 놓고는 다시 내 일을 한다.
1시간이 지난 뒤 핸드폰을 봤는데 여전히 연락이 없다. 얼마 전에 내게 회사 문제로 힘들다고,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던 기억이 났다. 설마.. 마음이 조금 떨렸지만 태연히 다시 전화를 건다. 통화 연결음이 끊어지고 이어질 때마다 불안은 커진다. 여전히 친구는 조용했고, 나는 다시 내 일을 한다. 1시간을 기다린 아까와는 달리 자꾸만 핸드폰을 보고, 눈은 모니터를 보지만 머리에는 친구 모습이 떠오른다. 끔찍한 결정을 내린, 내리려고 하는 친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친구가 여러 번 봉변을 당할 때쯤, 녀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야 술 마시고 있었어~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밥 먹자고 하려 그랬지~" 전화기 너머로 술집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들려온다. 밥 먹었다고, 재밌게 놀라고 한 뒤 전화를 끊는다. 나는 언제나처럼 짧게 한 마디 되뇐 뒤 모든 것을 잊는다.
'이번에도 별 일 없었네'
저런 상황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저런 반응은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몇 시간 전화를 안 받았을 뿐인데 친구를 죽여버리다니, 일상생활 가능하세요?'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안 하는 게 더 이상하다.)
먼저 내가 왜 저렇게 되었냐면..
지금은 사무직으로 옮겼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어머니는 형사셨다. 당시 유행했던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tv 프로그램 때문에 형사는 범인 잡는 민중의 지팡이로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tv가 아닌 우리 집에서 형사는 불안의 대상이었다. 어린 아들에게 멋진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던 건지, 어머니는 험악한 범죄자들을 직접 잡고 돌아온 날이면 내게 늘 자랑을 하셨다. 아마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영화도 아니고 범인 차량 위에 매달려서 100미터를 갈 리가 없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게 어머니는 공중그네를 뛰는 서커스 단원처럼 느껴졌다. 최고로 멋있었지만 한 번이라도 줄을 놓치면 모든 게 끝장인 그런 사람. 줄을 확인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나는 항상 자기 전에 안부 전화를 했고, 잠드는 순간까지 어머니를 걱정하다가 잠에 들곤 했다. '혹시 지붕에서 떨어지시면 어떡하지? 칼에 맞으면 어떡하지?' 하루 이틀이 아닌 일상이 불안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안도 적응되고 전화마저 지루해진 어느 날에 나는 야근을 하는 어머니께 전화를 하지 않고 그냥 잠에 들었고,
몇 시간 뒤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아버지가 새벽에 자는 나와 형을 깨워서 병원으로 같이 갔고, 응급실 앞에서 의사와 아빠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일단 고비는 넘겼다는 말이 기억난다. 응급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나였지만,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주변 모든 상황이 내게 소리치고 있었다. 뭐 때문에 엄마가 줄을 놓치신 걸까.
11살 때의 일이다. 그냥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다친 줄 알았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전부라고 항상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밖에 모른다는 사람이 다쳤으면 나 때문 아닌가?'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저녁도 먹었고 양치질까지 했다. 지난밤들과의 차이, 내가 알아챌 수 있는 유일한 차이는 오직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불안해하지 않은 채 잠들었다는 점뿐이었다. '내가 엄마를 걱정하지 않아서 엄마가 다쳤구나' 그때의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다행히 어머니는 몇 달 후 건강하게 퇴원하셨고, 나는 이후에 의식적으로 불안해했다. 다시 교통사고를 당하는 엄마, 범인에게 다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고 불안해하면 어머니는 항상 별일 없는 모습으로 돌아오셨고, 나는 그렇게 내 불안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그런 삶이 익숙해지니 불안의 대상은 엄마에게서 다른 사람들로 옮겨갔다. '친구가 안 오네. 자동차 사고라도 난 거 아닐까.'
이야기를 적어보니 굉장히 히스테릭한 삶을 살 것 같지만, 저런 불안은 정말 일어나기 힘들다.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내 의도적 불안증상이 나타나는 조건은 2가지이다.
1.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발생한 상황일 때
2. 그 상황이 신체적 위협( 대개 사고나 사망)과 관련되었을 때
즉, 친구들이 털어놓는 대부분의 고민들에는 증상이 발동하지 않는다는 말씀. '철이야 나 취업 못할 것 같아.' '철아 애인이 바람을 피는걸 내가 봤어' '철아 내 주식이 휴지 쪼가리가 되었어'라는 말에는 늘 who cares? 저한테 어떡하라는 겁니까~ 정도로 넘어간다. 그러나 만일 그런 고민을 하는 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거나, 잠시 바람 쐬고 온다고 나가더니 10분 정도 들어오지 않으면 눈동자가 날뛰는 심박수만큼 흔들리고, 불안한 망상은 친구를 여러 번 이 세상과 작별시킨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불안을 징크스 수준이 아닌 능력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불안해하지 않아서 불행해진 기억은 그 날 하루뿐인데도 나는 필사적으로 불안해했다. 다른 일에는 동요하지 않는 내가 고작 술자리에서 10분 사라진 친구 때문에 불안해하는 걸 본 친구들은 그런 나를 낯선 사람처럼 바라봤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유난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 유난을 믿는다. '내가 유난을 떨었기 때문에 걔가 이 자리에 있는 거라고!'
한 번 정도는 불안할 상황에서 태연히 있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그랬다가 그 날처럼 불행이 찾아올까 봐 두렵다.
나의 불안으로 인해 주변의 불행이 사라진다면 이 능력(?)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는 평생 이 능력을 갖고 살아야 하나. 이제는 익숙해져 불편함은 없지만 굳이 함께하고 싶지도 않은 능력이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