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 4
재미와 영화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때, 처음으로 나오는 질문은 '재밌어?'이다. 몇몇 영화는 그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시빌워>나 <배트맨v슈퍼맨> 같은 영화들. <시빌워>는 재밌었고 <배트맨v슈퍼맨>은 재미없었다. 영화의 목적과 관객들이 영화에 기대하는 목적이 일치할때 재미있는 영화가 된다. <시빌워>같은 경우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와 캐릭터들의 특징을 기대했었고 그를 충족시켜줬기에 재밌다.
<배트맨v슈퍼맨>은 카메라가 너무 많이 돌아서 어지러웠고, 두 캐릭터를 잘 살리지 못해서 재미 없었다. 영화에서 유희적인 요소가 주가 될때 재미는 분명해진다. 블록버스터, 스릴러 장르가 내게는 재미로 답할 수 있는 영역이다.
'재밌어?'라는 질문을 '추천해?'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면 답할 수 있는 범위의 영화가 더 늘어나겠지만 여전히 목이 막히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내상이 커서 다시 보고싶지는 않고, 그런 의미에서 추천을 해주기에도 망설여지는 영화들. (얼마 전에 봤던 <곡성>같은 영화들) 재미쪽에 일정 부분 발을 걸쳐놓긴 했지만 재미 외에도 따질 영역이 많고, 여러모로 볼만한 영화이지만 물어본 사람의 취향을 아는 사이에서 섣불리 추천하기도 애매한 그런 영화들이 내가 본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 대해 물을때 '어땠어?'라고 묻고, 내게도 그렇게 물어봐줄때 대답할 수 있는 폭이 늘어난다. 때론 이런 질문에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는 영화가 있지만, 재미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얼마전에 '곡성 재밌어?'라는 질문에 위에 썼던 말들을 사용해서 설명하니까 '그래서 재밌냐고?'라고 되물어본 친구 때문에 쓴 글은 절대절대 아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는데 여전히 정리가 덜 된 기분이다. 재밌는 영화는 좋은 영화이다. 그러나 좋은 영화중에는 재미와 동떨어진 영화들이 많다. 다음주에 볼 예정인 <엑스맨: 아포칼립스>는 꼭 재밌었으면 한다. 로튼 토마토 점수가 불안함을 증폭시키긴 하지만....
1장 2부 전개: '나'와 아들 크리스, 부부사이인 존과 실비아 4명은 휴가기간에 모터사이클로 미국을 여행중이다. 길을 잘못 든 뒤 잠시 쉬면서 엔진 상태를 확인하던 도중, '나'는 과거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정비소에 맡겼을 때의 일을 떠올린다.
공학 기술과 관련을 맺고 있긴 하지만, 그들 자신은 공학 기술 바깥쪽에 서서, 공학 기술과 거리를 둔 채, 초연한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그와 같은 삶의 태도를 획득한 것이다. 비록 공학 기술에 매여 살지만, 애정과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p.63>
프로그래머인 사촌형에게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는 수학을 잘해야 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사촌형은 수학보다는 수학적 사고를 잘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때는 말 뜻을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근래 들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직접 프로그래밍을 배워보니 웹페이지 구축에 한해서는 복잡한 수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사이트가 커질 수록 step by step을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가령 A를 커밋하고 실행시킬 경우 사이트가 실행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경우에는 반드시 A에서만 오류를 찾을게 아니라, 기존에 오류가 있었음에도 구동에 이상을 주지는 않던 B, C에서의 에러가 A를 만들면서 생겨났을 수도 있다. 또한 과거에 경험했던 에러의 해결책이 과거와 다를 수 있다. 문제를 일어난 곳에서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게 공학 기술 바깥쪽에 선 태도이다. 그들은 기술은 획득했지만 '존'과 '실비아'와 동일한 삶의 태도를 지닌 자들이다. 항상 유연하고, 내 경험과 시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겠다.
서두른다는 것 자체가 바로 유해하기 이를 데 없는 20세기적 태도다. 만일 당신이 무슨 일을 서둘러 처리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일에 더 이상 애정을 쏟을 만큼 관심을 갖지 않고 어서 다른 일로 옮겨가기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천천히, 하지만 조심스럽고 철저하게, 바늘이 잘려나간 것을 발견하기 바로 직전에 내가 가졌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과 같은 태도로 그 길에 접근하고자 한다. 바늘이 잘려나간 것을 발견해내도록 했던 바로 그 태도 말이다.<p.64>
서두를수록 일은 빨리 완성된다. 그러나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마감기한을 맞추는게 중요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마감기한이 없거나 기한이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서둘러 끝낸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애정이 뒤이어 할 어떤것보다 뒤쳐졌음을 말한다.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무엇, 보람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는 무엇을 빨리 만나기 위해 당면한 과제를 급히 마무리한다.
굳이 일이나 과제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도 이 말은 유효하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난 상황을 떠올려보자. 친구는 오랜만에 만난 내가 반가워서 이것저것 묻지만 나는 얼른 다른 장소로 가야만 한다면, 나는 친구의 질문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음에 밥 한 번 먹자고 성의없이 말한 뒤 그 장소를 떠날 것이다. 그때 우리의 대화는 완성되었는가?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다. 첫인사가 있었고, 근황을 묻고 답했으며 끝인사까지 했다. 그러나 그 대화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오직 악영향만 있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내가 자신을 귀찮아 한다는 것을 알고 상처받았을 것이고, 나는 이동하는 내내 찝찝했을 것이다.
애정을 쏟아야 할 존재들은 서두르지 않고 해결해야 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루 한 글'을 쓸때 서두르고 있는가? 아니라고 답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