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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Sep 03. 2015

사랑의 기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박민아는 평소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에게나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연인인 준호에게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날이 있었는데 그 남자는 그저 "그래서 민아가 그렇게 따뜻하구나"라고 말할 뿐이었다.
여자가 그 때 서운했던 것은 준호의 관심이 박민아의 내부에만 있을 뿐, 박민아의 바깥, 박민아라는 섬을 둘러싼 주변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뒤에 남자의 심경이 나오는 데,
'그녀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백한 가족의 비밀이라는 것이 너무도 평범하고 일반적이라서 도무지 어떤 대목에 감정이입을 해야할 지 헷갈렸다' 고 한다.



윗 글은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를 읽고 써두었던 내 감상문의 일부이다.

사랑의 기초는 아마 2년 전? 3년 전? 사랑이라고는 얄팍한 연애와 짝사랑 정도밖에 몰랐던 어린 날에 읽었던 책이다. 저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며 독서감상문 한 구석에 써둔 걸 얼마 전에 발견했다.

이 이야기를 지금껏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감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어떤 것을 느꼈기 때문에 결코 잊을 수는 없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은 뒤에 나온 남자의 심경이었다.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지금은 아주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내 고집으론, 오만한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나의 옹졸함인지, 아니면 욕심인지 몰라도 다른 사람의 아픈 사정을 저렇게 쉬이 '너무도 평범하고 일반적'이라고 결론짓는 사람과는 내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싶지 않다.

나도 누군가의 아픔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못 되지만

'눈물까지 글썽이며'를 이해하려고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의 깊이는 대체 어느 정도인가 무섭다.


사람 성향의 차이라고,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가버리기엔 어쩐지 좀 찝찝한 구석이 있다.

그 사람의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 사람의 현재를 말해주는 것이 과거이자 그 사람을 둘러싼 바깥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랑은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것인가 고민스럽다.



언젠가 그런 적이 있었다. 내가 박민아였을 때가. 준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충고를 해주었으나,

그 때 내 느낌은 '이 사람은 지금 내가 아닌 본인 자신에게 이야기 하고 있구나'였다. 당연히 그 사람의 말은 내게 와닿을 수 없었다. 나는 안타까웠다. 우리는 서로의 심연에 가닿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이 글의 소제목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내 생각은 이 책을 읽었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고 아마 2년 후에도 그렇지 않을까싶다.

10년, 20년이 지나면 조금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사람 각자가 가진 큰 틀은 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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